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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냥이 Apr 16. 2024

할머니와 할아버지, 효도와 후회


치매 노인을 돌본다는 것은 강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 친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셨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르침을 주시지는 못했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로서는 심한 고생을 하셨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자업자득일 때가 더 많았다.


돈을 버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셨다. 집안일도 꼼꼼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대한 임계치가 높지 않아서였을까,

할머니는 노력하고 복잡한 선택을 하기보단 치매로 모든 걸 잊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도피처럼.


그래서 결국 치매 초기-중기-말기의 모든 여정을 눈앞에서 보고, 겪었다.


담배를 그렇게 좋아하던 할머니는 당뇨와 합병증으로 인해 담배를 못 피우게 하자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매번 집 밖을 나가서 노숙자처럼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모았다.


그래서 늘 바지 주머니에는 담배꽁초가 담겨있었다.

그 당시엔 슬프기보다 화가 났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다가 이내 더 이상 폐지 줍는 일도 하기가 어려워지는 몸이 되자,

치매 노인이 된 할머니를 돌보는 역할을 자처하셨고,

할아버지가 지탱해 주신 덕분에 할머니 또한 오랜 기간 동안 그동안의 여자로서의 고생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하염없이 할아버지가 찾으러 다니게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펐다.

남들이 말하듯 재밌는 여행, 맛있는 음식, 즐길거리 그 무엇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효도도 못 받고

고생만 죽어라 하다가 가셨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고 슬펐다.


그런데 할머니는 달랐다. 슬프기보다 이제 담배로부터, 치매로부터, 구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고모가 그리도 살뜰하게 없는 돈을 털어서라도 효도를 해드리고 예쁜 딸 노릇을 톡톡히 해드렸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더 무덤덤했다.


근데 무덤덤한 나를 보고 할머니의 조카들이 뭐라고 소리쳤던 기억은 나는데 화장하러 가는 그 당일 날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슬프지 않았지만 슬펐던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두 분 모두 제대로 된 영정사진 한 장, 나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으니 후회되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아쉬운 걸 딱 하나 고르라면, 맛있는 음식이나 즐거운 여행 같은 효도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아다니러 나가려던 그 어느 여름날,

나는 웬일로 같이 나가자며 쫓아나가 놓고서는 할아버지 옆이 아닌 여섯 걸음 정도 떨어져서 뒤따라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낯간지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멀리 뒤떨어져서 걷기보다 옆에서 같이 걸어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가장 깊게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골목을, 그 동네를 지나쳐가질 못하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장소, 그 시간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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