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 정리 및 분석, 그리고 각 후보의 성적표
** 이 글은 문재인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시점(5월 10일 새벽)에 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정치 지형과 맞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기억/평가를 최대한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추가 편집하지 않습니다.
19대 대선 레이스 정리 - 각 후보들의 성적은
문재인의 무난한 당선으로 19대 대선 레이스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새 시대의 시작에 앞서 그 어떤 대선 못지않게 흥미롭고 독특했던 19대 대선 레이스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 분석 방법이 있겠지만 이 글은 이번 대선 특유의 구도적 기회와 제약 속에서 각 당 후보들의 선거 목표 달성 여부로 (가볍게) 각 후보들의 성적을 내보려 한다.
19대 대선 레이스는 대통령 "당선"을 목표로 한 문재인, 안철수와 "정치적 재기 및 도약"을 노린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두 그룹으로 나눠져 시작되었다. 구도적으로는 박근혜 탄핵 이후 지지할 곳을 잃은 거대한 보수 유동표라는 특징이 있었다. 때문에 공약, 토론, 후보 스타일과 같이 이전 선거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변수들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표들이 많았다. 유동층이 유독 두터웠던 19대 대선은 '당선'과 '정치적 도약'을 각각 노리던 각 후보들에게 어떤 선거였을까?
1. 문재인
문재인은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를 이룬 뚜렷한 성공 레이스였다. 다만 표 확장성에 한계를 보였다. 이번 득표율 41%는 50%에 육박했던 18대 대선 득표율보다 떨어진 것으로,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민주당 전통 지지 기반을 수성한 정도의 성적으로 보인다. 양자 구도가 아닌 5자 대결이라는 구조의 차이로 인해 일부 지지층의 이탈은 피할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나, 18대 대선 양자 구도보다 훨씬 많은 유동표가 존재했고, 탄핵 정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10%에 가까운 지지층이 이탈한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자세 정도는 필요하다. 이번 대선의 상대 후보들이 인지도 면에서 이미 대선을 한번 치른 문재인 후보에 비해 중량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국에서 고루고루 선두를 지킨 것은 상징적이며, 특히 강남 3구, 분당과 같은 전통적 보수 지역 모두에서 선두를 차지한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다..) 그 표수는 미미하나 주목할 만한 결과다. 전체 득표율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으나 새로 출범하는 정권의 정통성으로 부족하지 않다. 앞으로의 지지층 확장 여부는 이제 대선 전략에서 문재인표 정책과 정치의 공으로 넘어갔다.
2. 홍준표
홍준표도 이번 대선의 수혜자다. 다 떠난 것으로 보였던 보수층의 마음을 거의 TV토론 개인기 하나로 재결집 시켜내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으며, 본인 말대로 "복원"된 자유당에서 당권을 잡을 기반을 마련했다. 막판의 무서운 추격전으로 "정치적 재기"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당선"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홍준표 입장에서 대단한 성과다. 다만, 안철수, 유승민과 경쟁을 하면서 자신의 최소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선거 공학적 "강성" 발언들에 25%에 육박하는 폭발적 지지를 보이며 결집한 보수들의 선택은 한국 정치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여하튼 황당한 수준의 공약집이 말해주듯 애초에 당선이 목표가 아니었던 후보였다. 어찌 보면 윈윈이다. 홍준표는 애초에 원한 바를 이뤘고, 대한민국은 그의 당선을 피했으니깐... 비박과 친박의 갈등 속에서 앞으로 '독고다이' 홍준표가 잘 버틸지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
3. 안철수
안철수에게는 두말이 필요 없는 최악의 선거였다. '정치적 재기'를 넘어 '당선'을 얘기하며 대선을 마무리지은 홍준표와는 반대로 안철수는 '당선'을 위해 뛰다 '정치적 위기'로 대선 레이스를 마쳤다. 19대 대선은 사실 모든 면에서 안철수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였다. 안희정의 마음을 살피던 중도 보수표는 민주당 경선 이후 안철수의 것이 되어야 했다. 중도보수에게는 유승민이라는 대안이 있었지만 문재인의 당선을 막는 것이 투표의 최대 목표였던 그들에게 안철수가 더 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안철수에 마음이 쏠리던 중도표는 사립유치원장들 앞에서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는 발언의 타격을 시작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유치원 정책이 사람들에게 중요해진 것인지, 그만큼 안철수 지지가 옅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에 이어 잘 알려졌다시피 TV토론에서의 피아스코(fiasco)를 기점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지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급격히 상승했다 빠르게 빠진 안철수 표는 이번 대선의 큰 특징이었다.
4. 유승민 & 심상정
유승민과 심상정은 "정치적 도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뛰었다. 유승민(6.8%)이 심상정(6.2%)보다 약간 더 높은 득표를 하며 마무리 지었으나 이번 대선의 향방을 보수 유동층이 갈랐다는 점에서 유승민의 낮은 득표율이 더 실망스러울 수 있다. 특히 탄핵의 오명을 쓰고 있던 자유한국당의 도약은 뼈아플 것이다. 유승민에게는 '전투에 승리하나 전쟁을 지는'이라는 평이 와 닿는다. TK의 배신자 낙인 효과가 있었고, 중도진보를 대상으로 한 "따뜻한 보수"와 보수에 어필하기 위한 "강성 안보" 정책이 역으로 각각 보수와 중도진보의 마음을 잃은 정책 노선들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있다. 심상정은 대선 여론조사에서 10%에 육박하던 지지율보다 낮은 6%대로 마쳤지만, TV토론을 통해 분명 업그레이드된 이미지로 대선을 마쳤다. 지지율이 다소 아쉽지만, 민노당과의 분당 이후에도 붙어있던 종북 이미지를 지우고 당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성공 레이스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선거는 내 전공분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려서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밤새워 개표 방송을 보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은 내 옆에서 개표 방송을 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짧게라도 내 언어로 이번 대선을 정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