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어른이

by 박다화

이사를 결심했다.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골목길이, 가끔 현관 밖에선 시끄럽게 주정부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화장실 천장에 피어있는 곰팡이가, 그냥 누워있으면 뭔가로 가득 차있는 내방이 지겨워서.

또한 계속해서 고지서들이 사라지는 것과 인터폰이 없는 집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그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누군지 알 수 없고, 또 내가 누구냐고 물어도 계속해서 말없이 문을 두드리는 모르는 이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집주인에게 말해도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 딱히 해주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리고 그런 것에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지겨워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랬다고 이 모든 지겨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이사를 가는 방법 뿐이었다.


나는 자주 지겨워하는 편이다. 등을 간지럽히는 나의 긴 머리카락을 사랑하지만 지겨워져서 잘랐고 늘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지겨워서 sns 탈퇴와 비활성화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과 몇 번이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람처럼 나는 번번히 머리를 기르고 다시 sns로 돌아간다. 이게 다 미련이 많아서 그렇다. 이번에도 때가 맞아 카카오톡을 탈퇴했는데 또 며칠 뒤에 다시 설치를 해야겠지. 그런 내가 나는 지겹다. 그렇다고 삶을 놓는 것은 또 무서우니까. 그것 또한 미련일지도 모르지.

내가 처해있는 조건에 맞는 대출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고 집주인은 세 달치 월세에 중개비를 요구했지만 어쨌든 알았다고 했다. 돈은 좀 아까웠지만 따지고보니 그 돈이 그돈이길래. 지금 머물고 있는 곳보다 좁고 안전하고 깨끗한 곳으로 계약을 했고 만기까지 한 달 반이 남은 적금을 깨서 계약금을 넣었고 대출을 신청했다.


확정일자를 받아야 해서 계약금을 넣었다는 영수증을 공인중개사에게 받았을 때 어느 주민센터에 가야하냐고 물었다. 공인중개사는 자신의 부동산과 가까운 주민센터를 말했고 아빠와의 약속을 앞두고 그곳에 갔을 때 그곳의 공무원은 이 주민센터가 아니라고 했다. 더운데, 엄청 헤매면서 찾아간 주민센터였는데. 혼잣말로 공인중개사를 욕하면서 내가 원래 가야하는 주민센터를 갔다. 내가 잘못 찾아간 주민센터에서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아빠는 이미 서울에 도착했고 주민센터에서도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내 일처리는 조금씩 더뎌졌다.

은행에서 대출까지 신청을 하고 아빠에게 가려고 했는데 주민센터를 나왔을 땐 이미 아빠와의 약속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빠와의 약속에 늦었다고 딱히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아빠는 담배를 피우며 기다린다고 했고 그는 통화를 자주하는 편이었기에 그 나름대로의 시간을 잘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났던, 고등학교 때 글을 쓰느라 몇 번 만났던 애는 나에게 변한 것이 없었다고 했는데. 제군은 내게 늘 그대로라고 했는데. 뭐, 사람은 알 수 없으니까. 나도 누군가를 볼 때에는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오는 때가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아빠도 그랬겠지. 나도 가끔은 내가 낯선데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는 하나 분명히 타인인 내가 아빠는 가끔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 또한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아빠가 가끔, 아니 자주 낯서니까.

아빠와 헤어지고 간 은행에서 대출신청을 위해 서류를 제출했다. 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신청이 밀렸다. 내가 가려는 곳은 원룸들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대출이 이미 신청된 방들이 있어 내가 신청하고자 하는 방은 그 방과 다른 곳이라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내일 쯤 다시 연락이 갈 거라고, 그럼 나는 다시 서류에 사인을 하러 오면 된다고 했다. 대출이 신청이 돼야 나는 이사를 갈 수 있을텐데.

처음 대출을 받겠다고 독수리에게 말했을 때, 독수리는 내게 어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내가 대체 언제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빚을 지는 것이 어른이라면 내게 아이였던 순간은 있었을까. 나는 늘 혼자서 모든 걸 한 것 같지만 그래도 틈틈히 누군가에게 기생했다. 가끔은 누군가의 골수와 피를 빨아먹으면서. 어쩌면 지금도. 다 빚이다. 그 중 어떤 빚은 다음생에서나 갚을 수 있겠지.


언젠가 한 번 제군에게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죄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나의 삶 자체가 죄 같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빚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죄인으로 사는 것보다 빚쟁이로 사는 것이 그래, 조금은 낫지, 라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그러다가 죄인이나 빚쟁이나 그 결은 엇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구나.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구나. 나는 또 뭐로 변하려나.


2019.07.02

작가의 이전글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