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삿포로의 겨울 같았으면
나는 지금 홋카이도 신치토세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 11월 말일자로 2번째 프로젝트가 무사히 마무리되어 여유가 생겼고, 때마침 좋은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어 4박 5일의 삿포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같이 여행을 온 친구들은 모두 나와 동갑인 29살이다. 처음 말이 나왔을 땐, 마지막 20대의 한 달을 낭만 가득한 시간으로 보내보자고 했었다. 각자 시간을 가지고 글을 쓴 뒤 밤에 술 한 잔 하며 공유하자는 조금 특이하면서도 거창한 계획도 세웠었다. 우리는 실제로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모습은 내가 20대 초에 했던 여행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한 친구가 비에이를 여행하던 중에 했던 말처럼 “예전의 모습과 다를 것 없이 지금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좋다.”
작년 2023년에 취업준비를 하면서 시야가 많이 좁아졌었다. ‘나’를 중심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지를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반대급부로,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지도 많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실 취준 기간 동안 나는 나의 유능함에 든든함을 느끼기보다는 나의 부족함에 괴로움을 느낀 시간이 더 많았다. 심지어 취업을 하고도 내가 가장 가고 싶던 회사를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만큼 세상을 좁게 바라보고 있었다.
삿포로 시내인 스스키노에서 여행 마지막 밤, 분위기가 꽤나 괜찮은 이자카야에서 따뜻한 사케를 마셨다. 비싼 가격 탓에 맘껏 먹지는 못하고 조금씩 아껴 마시느라 첫 잔은 따뜻하게, 다음 잔은 조금 미지근하게, 마지막 잔은 식은 상태로 마셨다. 잠깐 내 이직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꼭 이직을 실제로 하지 않더라도, 이력서를 내보면서 자기의 시장 가치를 점검하고 텐션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근데 텐션도 계속 바뀌지 않아?’하고 말했다. 오 정말 그렇다. 지금 내가 가진 텐션은 내가 취준 때 가졌던 그것과 많이 달라졌다.
2024년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취업준비로 인해 좁아졌었던 시야를 다시 넓혀가는 한 해였다. ’나’로 집중됐던 관심이, 내가 하는 일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으로 분산됐다. 특히 나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핵심적인 일에 집중하여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주도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소통하면서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판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할 때 내가 성장한다는 것을 느낀다.
겨울의 삿포로에는 눈이 정말 많이 온다. 매일 오고 자주 오고 많이 온다. 그래서 항상 눈에 덮여있다.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단조로운 모습에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내가 이번에 글로 적은 내용을 한 줄 요약하자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착하기 그지없는 재미없는 말이다. 하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넘쳐나는 정보와 자극적인 콘텐츠, 불안한 미래, 마음을 급하게 하는 욕망, 기대와 달라 생기는 실망감, 부러움이나 열등감 등을 일단은 덮어둘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삿포로의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 단조로운 흰 풍경을 만들어 내듯이, 그런 것들을 덮어두고 내 역할에 충실한 2025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