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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un 10. 2017

경의선공유대잔치 하는 날 아침에 쓰는 글


경의선공유대잔치 하는 날 아침에 쓰는 글


황푸하에게 연락이 왔다. 경의선 공유지에서 잔치를 해보자 했다. 악어들의 유지완과 셋이 준비하자 했다. 나중에는 활동가 공기까지 넷이 되었다. 나는 황푸하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우리는 친구다. 그리고 잔치라는 것은 일단 재미있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딱히 너무 이상하거나 부담스러운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친구와 함께 한다.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대체로 기쁜 일인 까닭에서다.


5월 초순 쯤이었고, 우리는 부천에서 만나 고기를 먹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경의선 공유지가 만들어지게 된 맥락 등에 대해 조금 더 세세히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의선 공유지는 어쨌거나 법이나 소유권과는 관련없이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고, 그런 까닭에 크고 작은 정치적 / 행정적 분쟁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의 김상철 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와는 별도로 잔치는 잔치대로 차근차근 준비했다.


며칠 후 만난 김상철 씨는 우리에게 경의선 공유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 중에는 아는 내용도 있었고 모르는 내용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5년 경의선 철도가 지하화 되었고, 이후 폐선부지는 그대로 방치되어있었다. (홍대앞을 종종 다닌 사람은 공중캠프, 살롱 바다비 근처의 폐선부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속칭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연남동을 가로지르는 공원길도 원래는 폐선부지였다.) 그러다 2013년, 서울시와의 협의 하에 공덕역 근처의 폐선부지에 일종의 대안적인 상설시장인 늘장이 들어선다. 그렇게 2년 쯤을 운영했고, 서울시와 계약이 끝나 운영을 멈췄다. (지금 보이는 몇몇 가건물들은 늘장 때부터 존재하다 버려지거나, 쓰이지 않게 된 곳들이다.) 늘장이 끝난 그 자리에 다음 차례로 들어올 것은 E모 그룹에서 짓는, 외국인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관광호텔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에서 호텔을 짓는 것이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고, 서울시 측에서도 E모 그룹에게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실은 호텔을 짓는다는 건지 주차장을 짓는다는 건지 영화관을 짓는다는 건지 뭔지도 불분명하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공공의 자산인 폐선부지를 통해 특정한 대기업 그룹이 독점적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어 자리잡게 되었다. 강제로 철거당한 사람들, 돈이 없는 사람들, 아니면 그냥 법 같은 것과 상관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


김상철 씨에게 물었다. 그래서 경의선 공유지에서 하고 싶은 게 뭐에요? 그가 말하기를. 자신들은 이곳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했다. 공유라는 것이 그렇듯, 누군가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했다. 누군가 자기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몰렸을 때, 잠시 거쳐갈 수 있는 공간, 다시 살아갈 힘을 모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했다. 그런 공간이 필요한가요? 예, 필요하죠. 이 도시는 너무 꽉 차있으니 이런 공간도 하나 쯤은 있어도 되잖아요. (물론 이렇게 문학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각색한 것이다.) 우리는 그게, 법적으로든 뭐든 따져봐야할 것은 많겠으나, 어쨌건 그럴싸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매력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법이다.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가볍게 풀어낼 수도 있다. 어쨌건 우리는 잔치를 만들기로 한 사람들이고, 잔치라면 무슨 플래카드를 붙이거나 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놀고 좋은 기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것들, 우리는 마음을 다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어찌보면 버려지거나 방치되고 있는 땅이고, 내세울 것 없는 땅이지만 이곳에서도 기쁨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돈으로 말하는 것에 늘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값어치란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있는 까닭에서다.


막상 준비하다보니 걸리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일단 아무리 공유를 테마로 한 잔치라지만, 시드머니를 하나도 준비해놓지 않고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죄다 주변 친구들에게 폐 끼쳐가며 이것 빌리고 저것 빌리고 하면서 준비했다. 음악가 친구들한테도 솔직히 돈이 없고, 그럼에도 같이 할 수 있다면 해보자고 얘기했다. (다행히 다들 도와주겠다 했지만 이는 사실 우리에겐 갚아야할 큰 빚이다. 어떻게든 갚을 것이다. 자율기부로 돈이 들어온다면 모두 나눌 것이다.) 미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서, 민원에 대한 이슈도 있었다. 이건 어차피 미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까닭에,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해야한다. 어쨌건 나는 잡혀가도 내가 잡혀갈 생각이고 벌금 나오면 조그맣게 공연을 해서라도 메꿀 생각이다. 우리가 나쁜 짓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경찰 와도 그렇게 많이 혼나지 않을 거라 본다.


어쨌건 잔치니까 잔치국수를 준비했다. 사먹으면 아현에서 철거당해 공유지에서 장사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기뻐할 것이다. 경의선 공유지에서 토요일마다 원래 운영하는 장터도 있다 들었다. 뭔가 공유하거나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가져와서 그냥 공유해달라 사람들에게 부탁했는데 얼마나 많이들 가져올 진 모르겠다. 나는 일단 책과 음반을 준비했다. 실은 이렇게 크게 할 생각도 없었고 조그맣게 야유회 가듯 잔치하려던 거라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별로 큰 건 아니지만. 모르는 게 많다는 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모르는 게 많아서 나쁠 때는 불안할 때다. 나는 지금 별로 불안하진 않다. 딱히 따박따박 철저하게 준비하진 않았지만 우리 선에서 체크할 수 있는 건 다 체크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공수하면 된다. 그러니까 다 끝나고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 즐거운 밤이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그러려고 우리가 이 잔치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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