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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ul 24. 2016

제주생각

제주도에 내려온 지 닷새 되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것은 첫째로 그간 쟁여두었던 아이디어들을 정리해 완결된 곡의 형태로 만들기 위함이고, 둘째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첫째라고 쓰긴 썼지만 새 앨범을 낸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부담은 적다. (반면 작년 익산에서 머무르던 겨울과 여름엔 정말 죽자고 달려들었다. 그때는 KT&G 상상마당과의 계약에 따른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벌써 한 곡을 마무리 했고 다음 곡도 순조롭게 절반 쯤 진행되고 있다. 이변이 없다면 오늘 내일 중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실은 둘째 이유가 더욱 중요했다. 올해가 유독 심했으니, 몸과 마음이 성할 날이 정말로 없었다. 몸도 그랬지만 특히 마음이 더욱 그러했고, 마음이 그러하니 몸까지 덩달아 더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제주 내려오기 직전의 몇 주 간 나는 물론 티나게 몸이 안 좋기도 했으나, 마음 속으로 깊이 우울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고, 그러다 '이렇게는 쓰레기가 될 뿐이야'라는 생각에 바깥에 나가 억지로 술을 마시곤 돌아왔다. 특별하게 우울할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삶의 많은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음악도 안 들었고 책도 안 읽었다. 《음악의 신 2》를 가끔 보며 헛웃음 지었던 것 빼곤 그리 즐거울 일도 없었다.


음악가, 이 직업의 단점 중 하나는 속얘기를 누구에게도 쉽게 할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솔직하고 밝게 살아가는 훌륭한 음악가도 물론 많겠으나 내 경우에는 그랬다. 직업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그리고 포지션이란 것이 확고해지면 확고해질수록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강박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음악을 하는 일 때문에 내 감정을 포기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곤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우울을 동력삼아 작업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나는 나의 우울을 동력삼아 작업을 해나가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기쁨이 되고 싶다.


제주에 내려와선 사실 별로 열심히 안 했다. 열심히 안 했다곤 했지만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내키는 만큼 잤고, 내키는 만큼 읽었고, 내키는 만큼 들었고, 내키는 만큼 놀았고, 내키는 만큼 먹었고, 내키는 만큼 만들었다. 그냥 자연스레 하니 좋았다. 친구들과 간만에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제약없이 여러 이야기 나눈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바다와 산과 하늘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주 아름다운 하늘과 그 빛을 반사해 아주 짙고 푸르고 기개가 넘치는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솟아올라 구름을 뚫고 높으신 누군가에게 기도드리는 듯한 산을 보았다. 내가 본 적 없거나, 보고도 못 본 척 했거나, 몰라보았던 거룩하고 영험하며 생명으로 약동하는 풍경 속에 내가 존재했다.


그것은 겸손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시영 시인의 시가 떠올라 적는다. 제목은 "절"이며 2014년 (주)창비를 통해 발간된 시집 《호야네 말》에 수록된 시다. "서초중앙하이츠빌라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경비 아저씨는 / 저녁이면 강아지와 함께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 세상엔 이렇게 겸손한 분도 있다"


좋아하는 친구인 음악가 권나무의 "여행"이란 노래엔 "비밀스러운 삶 / 고독한 삶이 아닌 비밀스러운 삶"이란 노랫말이 있다. 나는 이 노랫말을 참 좋아한다. 나는 이 노래를 소속과 정체성에 대한 노래라 생각한다. 소속과 정체성은 비슷해 보일지언정 꽤 다른 의미의 단어다. 사람 삶의 많은 것은 보통 자기 내면(=내부)와 세계(=외부)의 밸런스에 기반해 결정된다. 소속은 외부와 더 밀접하다면, 정체성은 내부와 더 밀접하다. 한국사람의 특징일까 싶기도 한데, 나는 소속 그 자체를 그 자신의 정체성으로 오인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이를테면 '당신은 ○○의 소속이니 그의 정체성도 ○○임을 지향할 것이다'라는 류의. 내 경우로 치환하자면, 예를 들어 나는 노동당 당원이니 노동당과 같은 입장을 가질 것이라 미리 판단된다. 또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조합원이니 자립음악생산조합과 같은 입장을 가질 것이라 미리 판단된다.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니 '메갈'이냐는 식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너무 띄엄띄엄 본다 생각한다. 만만하게 살지 않겠다. 나는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기도 한다. 싫어하기도 하고 싫어하지 않기도 한다.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물론 나도 소속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영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으론, 나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은 편안하고 좋은 일이나 한편으론 안주하는 결과로 나아가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안주하고 있다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이야기다.) 적당한 하중은 나쁘지 않지만, 과도한 하중은 자신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을 무엇보다도 돌보고 싶다. 그것은 고독한 삶을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곧 나'라는 삶의 신비를 잘 어루만지며 다시끔 자유롭게 경로를 만들어보겠다는 이야기다.


친구가 차를 렌트해 드라이빙을 할 수 있었다. 밤에도 드라이빙을 했고 낮에도 드라이빙을 했다. 밤은 어둠 속을 달려 좋았고 낮은 아름다운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을 끼고 달려 좋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들어 좋았다. 음악을 들어 좋은 감정을 느낀다는 게 참 좋다. 몸과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나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얼마 전엔 친구인 파블로프를 인터뷰 할 일이 있었는데, 마침 러브락 레코드의 성훈 형도 동석해있었다. 파블로프에게 질문을 하다 형에게도 물었다. "형은 파블로프가 어떤 밴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성훈 형이 답하길. "나는 얘들이 음악을 계속 좋아했으면 좋겠어.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면 돼. 그거면 다 돼." 내 생각도 같다. 제주에서 종종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인정한다. 내가 이기적으로 굴 때 생기는 책임을 내가 진다, 는 것이 바로 내가 이기적인 사람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음악을 왜 좋아할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며칠 동안 생각한 결과는, 일단 재미있어서가 첫 번째다. 그런데 무엇이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음악마다 각자 다른 이야기와 표정, 삶이 담겨있어 좋다고 답할 것 같다. 어떤 음악이건 그 안에 나름의 수다가 존재한다. 나는 그 삶을 엿보는 게 좋다. 누군가를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위할 때 자연스레 남 역시 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을 높은 자유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마음 가는대로 가려한다.


제주에서 나는 "모습"이란 곡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꽃길"이란 곡을 쓰고있다. 화요일에는 부산으로 넘어가고, 금요일엔 창원에 간다. 그 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두서없는 이야기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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