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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Dec 26. 2018

2018년에 알게 된 것들

- 식사 모임이 있었다. 모임 끝나고선 무리지어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좋아하는 선배(이렇게 써도 될까? 선배라고 부른 적은 없지만 나는 늘 그를 업*에 있어서의 선배라 생각해왔다.)와 나란히 걷는데, 그가 내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 자네는 아직 기회가 많아." 별 거 아닌 말이지만, 그냥 그 말이 고마워 오랫동안 기억에 맴돌았다.


* 직과 업의 차이 - http://webzine.arko.or.kr/load.asp?subPage=10.View&idx=565&searchCate=11


-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선 (누군가)에게 많이 배웠으면 싶었다. 처음 하는 일이니까 (누군가)의 가르침이 있으면 더 빨리 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르쳐 줄 (누군가)가 없더라고. 나는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그런데 연말쯤 생각해보니 예전에 음악 만들 때도 (누군가)에게 딱히 배운 적이 없었네?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였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내가 몰랐을 뿐, 처음부터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


- 말은 이렇게 해도 인간이 배워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현질이 최고다. 그냥 필요한 것이 파악되면 가르쳐주는 데로 가서 돈 내고 배우면 된다. 그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닌가. (친구에게 배우고자 할 때는 친구한테 가르쳐 달라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옆에서 일 하면서 얘는 어떻게 이래 해? 보면서 곁눈질로 배우는 게 낫다. 돈이 안 오가면 일단 집중이 잘 안 된다.)


- 다시 연말로 돌아가자면, 소위 선배라 부를 만한 연차의 사람들에게도 딱히 답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야기 오래 해보면 실제로 답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더라고. 그래서 나 같은 후배들에게 명확한 답안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게 때로는 조금 웃기기도 했다. 어차피 자기들도 못 하면서 말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 하지만 답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다 맞을 수는 없고, 한 70~80퍼센트 정도만 맞아 떨어져도 뭐 일단은 괜찮지. 그런 (70~80점 짜리)답을 생각날 때마다 메모지에 수 십 개씩 써놓은 다음에 가끔씩 (적당한 급부가 있을 때) 하나씩 풀어내야 먹고 살기 좋을 것이다. 뭐라도… 되겠지요…


- 이제 30대 중반으로 넘어간다. 30대 중반에는 어떻게 살까? 후반에는 어떻게 살까? 40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50대 넘어가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많이 한다. (부질 없다.) 어쨌건 요새는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할 것인가 정도는 있는데, 막상 이를 구현하고자 하면 벽에 부딪히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일단 일주일에 3일 정도만 회사에 다니고, 다른 날에는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라던가… 회사를 대충 다니고 싶은 게 아니라, 하나의 일이 아닌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건데, 현실적으로는 이런 조건을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지. (다양한 일을 할 때 서로 막 얽혀 들어가면서 이상한 시너지가 나는 모양새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 올해는 부러 겸손하게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렇다고 내년에 거만해질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겸양은 안 떨 것이다. 떨어보니 재미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 코딩을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도 조금 공부해보려고.


- 새해에는 R&R을 기깔나게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망하는 프로젝트에 조인하기 때문에…) (나를 도와야하는 일이 있을 거란 얘기다.)


- AI 기술을 쓰건 말건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 무지하게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뭐, 판단, 정치, 조율, 협상, 그리고 수많은 노가다… 아직 AI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죠.


- 진짜 일 잘 하는 조직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잠깐 느꼈던 적이 있는데, 계속 둘러보다가 내린 결론은 진짜 일 잘 하는 조직이란 건 좀 허구… 라는 것이었다. 일단 진짜 일 잘 하는 조직이라면 나랑 놀아줄 이유도 없을 거고, 그냥 내가 진짜 일을 잘 하고 그런 조직을 가꿔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쓰다보니 2018년은 전에 없이 수동적으로 일을 하던 한 해였는데, 아무래도 수동적인 건 적성에 맞질 않는다. 다시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


- 올해 들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느낀 게 나는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란 거. 여기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하고 싶은 게 정말로 많은데, 몸이 하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올해도 그게 문제였다. 앞으로도 그게 문제일 것 같다.


- 음악은 여전히 황홀하고 좋다. 다들 좋아하는 Mitski를 나도 당연히 좋아하는데, 종종 멜로디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릿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울려대는 탓에 곤란함이 많다. (그런데 Mitski 아는 누나랑 너무 닮아서 그게 좀 웃기다. 그냥 개인적인 얘기.)



- 시티팝이 열풍이라 해야하나? 여하간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업계에서의 피드백이라거나… 이런 건 조금 짜치는 부분도 있고 귀여운 부분도 있고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하고… (실은 거의 모든 일들이 다 이렇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  그렇지만 이런 걸 다 제껴두고서 보자면 결국은 조금 짜치더라도 감수하고 밀어붙여야지 돈이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기회주의 욕 많이 하지만 기회를 잡는 것도 실력이니까 말예요. 그거랑은 관계 없이 옛날 명곡 하나 올려본다.



- 그리고 시티팝 얘기 하나만 더 하자면 오누키 타에코 내한 공연 보고 싶다… 누가 좀 불렀으면 좋겠다. 아직 현역이시잖아…



- 올해 본 것 중 가장 멋졌던 거? 로맨틱 했던 거? 는 Yogee New Waves 였다. 아… 공연이 좀 잔망스러운 맛이 있었다. 끼 부리는 게 웃긴 데 또 낭만적이더라고. Yogee가 동시대 일본 밴드들하고 요래저래 엮이긴 하는데 얘네는 좀 더 젊은이 안 같고 아저씨스러운 맛이 좀 좋다고 생각한다. (Suchmos랑 Yogee는 뭐가 비슷하다고 엮이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 능청부리는 것도 좀 젊은 나훈아스럽다. 그리고 Boy Pablo의 공연 또한 무척 좋았다. 무대에서 하는 짓이 자연스레 귀여운 게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더라고. 햐, 뭘 먹고 자라면 저리 천진난만 할까, 무대 보면서 계속 그 생각 뿐이었다.



- 파라솔이 더 이상 새로운 곡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슬프다.



- 2018년에 새로 나온 음악 중 뭐가 가장 좋았어? 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 올해는 신보를 열심히 안 들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늘 신보를 열심히 안 들은 사람이긴 하다. 여하간 생각나는 건 Jvcki Wai가 좋았고, 이진아가 정말 너무 좋았는데 인기가 많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주변에 이진아 좋아하는 거 나 밖에 없는 거 같다. 진짜 기가 막히고 최고인데… (소외감) Ichiko Aoba가 좋았고 (그런데 이 분은 Nanao Tavito 커버가 너무 좋아 아름답고 최고야 이기 때문에 굳이 신보 대신 커버를 링크 걸어본다…) 공중도둑(a.k.a. 공중도덕)은 레전드급 freak folk를 내셨기 때문에 이건 뭐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냥 한국 역사상 최고 명반 중 하나가 되어벌였다) 공중도둑과 이름이 비슷한 공중그늘도 매우 좋았다 음원은 11월에 발표한 EP 버젼들이 훨씬 좋은데 비디오는 파수꾼 싱글 발매될 때 나온 비디오가 올해 나온 비디오들 중 가장 예쁘다고 할까 전복들은 별로 안 유명해서 거의 혼자만 좋아하는 대구 밴드인데 올해 들은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기타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로 저스트 기타팝 (그래서 좀 미련곰탱이 같은 게 꿀맛이다 곰이 원래 꿀을 좋아하지…) 그리고 Sudan Archives가 정말 너무 좋았다 늙고 배나온 중년 아시안의 부족한 힙을 채워준달까 이리 쓰니 생각보다 많이 챙겨들은 것 같기도 한데 정말 안 들었으니 반성하고 내년에는 많이 들어야 겠다 다짐을 해본다… (여름에 Abba만 조금 덜 들었어도 신보 훨씬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Abba 뽕에 맞아서 한 두달 쯤 Abba만 들었네)



- 연말 들어 몇 개의 공연을 자의로건 타의로건 하게 되면서, 이제 공연은 가능한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게 질리는 게 가장 지친다. 너무 징글징글한 사람이야.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바뀐 것이라면, 음악으로 돈 벌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졌다는 거. 이루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긴 한데 그건 아주 개인적인 목표라서 누군가에게 딱히 서비스 되거나 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내가 내킬 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정도까지만, 내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하고 싶다. 이젠 그래도 돼.


- 그런데 Eastern Youth 너무 좋지 않니? (2018년 연말 되어서야 처음 제대로 들어본 사람)



- 병을 얻어 평생 맥주를 마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 2년 쯤 전부터 결려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살던 시절이어서 그냥 무시하고 산 듯? 술이나 고기도 가능한 자제한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간의 삶에 대해 받아야 할 벌 중 하나라 생각하고, 가능한 기쁘게 받아 들이고자 한다.


-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건 좋은데 삶은 조금 더 단순해야 한다.


- 그냥 '개인'이라는 게 몹시 기쁠 때가 있다.


-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a) 흑화되는 사람이 있고 b) 정신승리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c)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다음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을 보면, 그리고 나 자신을 보면 c를 하는 게 정말로 어려운 것인가 보다, 생각이 든다. 막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c를 선택하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a나 b로 귀결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람들 말은 별로 안 믿기로 했다.


- 새벽에 홀로 누워있던 시간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냥 그 감정들에 대해서만 써도 앨범 하나 분량 정도는 나올 것이다.


- 올해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원주 중앙시장 우리장터에서 구워 먹은 모듬구이. 말이고기로 유명하다는 산정집에 가려다가 날이 안 맞아서 부랴부랴 찾아간 곳인데, 어마어마하게 호강했다. 화로를 앞에 두고 오손도손 구워먹는 기분이 기가 막혔다. https://blog.naver.com/jinalec/220997464250


- 2018년에는 음식 만드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음식 만들고 있으면 기분이 흥겹고 좋았다. 2019년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훌륭한 아마추어 요리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보고 싶은데… 몸은 하나인데 하고 싶은 것은 늘어만 간다…)


-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친구들 감사해! 내년에는 더 차분하고 기쁘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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