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얼굴 본 지 오래 되어 안부를 묻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통화를 끝내고 차가운 물을 마셨다. 살면서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구나 생각했다.
- 아버지와 어머니는 취향이 확연히 갈렸다. 아버지는 자동차(세피아)에서 음악을 틀었다. 동물원, 이문세 같은 것을 주로 틀다 이따끔 스콜피언즈 같은 것을 듣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나 알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록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킹 크림슨은 아버지 덕분에 처음 알았다. 거실에는 전축이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그 전축으로 늘 음악을 틀어놓고 집안일을 했다. 클래식 음악과 샹송이 차례로 재생되었다. (그때 나는 프렌치 팝이라는 용어를 몰랐다.) 막상 본인은 허스키한 보이스의 소유자였다.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성당 노래대회에선 늘 상을 받아왔다. 어머니는 심심할 때마다 핫케이크에 버터와 시럽을 올려 어린 아들과 딸에게 먹였다.
- 공부를 잘 했고 체육을 못 했다. 어린 남자애들 커뮤니티에선 체육을 못 하면 무리에 들기 어려웠다.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 대신 나와 비슷하게 숫기 없는 친구들과 모여 큰 마찰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잘 지냈다. 학교 안에선 조용했지만 학교 밖으론 잘 나다녔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북적일 때다. 비트매니아, 퍼커션 프릭스 같은 것을 함께 즐기는 동호회에서 오래 활동했다. 일렉트로닉이란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듣다 보니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만들기 시작했다. '투 스텝 개러지' 같은 것을 뭔지도 모르고 따라해 보았다.
- CD를 많이 가지고 다니는 여자애와 짝이 되었다. 자연스레 서로가 가진 CD를 교환해 듣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많이 잊혀졌을 한국 초기 인디밴드들의 CD가 많았다. 허클베리 핀이나 3호선 버터플라이도 아마 그때쯤 처음 들었을 것이다. 마침 이나영과 양동근이 나오는 드라마가 히트하고 있었다.
- TTL 콘서트라는 것을 갔다. 디아블로와 디스코 트럭, DJ DOC, 롤러코스터 등이 나왔다. 그런 대형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젊고 신났던 우리는 몇 시간을 헤드뱅잉을 했다. 다음 날부터 목 근육이 완전히 나가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롤러코스터는 그때도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그룹이지만 라이브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하지만 그게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도 많은 페스티벌을 함께 갔다. 세어보니 15년도 넘게 보았고 친구네 아기도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생각할수록 정말 이상하다.
- 대학에 들어가서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1년을 술을 마시니 후배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또 2년을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 군대에 갔다. 군대에 가기 전후로도 계속 마셨다. J는 자취를 했고 마침 딱 4~5명 정도가 마시기 좋은 사이즈였다. J의 집은 금세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J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음반을 낸 적이 있는 뮤지션이었지만, 그래 봤자 그냥 그 나이대의 애였다. 하지만 왕성하게 음악을 팔 시기였는지, 소주를 마시며 정말 아무 거나 들었다. 지미 헨드릭스와 아케이드 파이어, 캔(인지 캉인지)을 듣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난다.
- J와 연애를 하던 A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였다. (그는 내 친구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이리 똑똑한 친구가 있다는 게 나는 자랑스럽다.) 한 번은 무슨 일본어로 부르는 좋은 음악을 듣고 있길래 뭐냐고 물어보니 키린지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일본 음악은 엑스재팬 정도 밖에 몰랐다. 생각해보니 아라시와 모닝구 무스메는 알았다. 어쨌건 그때 키린지를 처음 들었다. 10년도 넘게 들을 줄은 몰랐는데.
- 이제 군대를 가야하는 타이밍인데 분량조절에 실패했고 내일 출근해야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쓴다. 군대 다녀온 지 10년 넘었고 그 사이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더욱 수두룩 빽빽인데 큰 일이다. 언젠가 다음 편에서…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도 미미하리라… R.I.P. … (R.I.P.는 김윤아의 에세이집에서 처음 본 표현이었는데… 투 머치 토커다 증맬… 끊어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