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선(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 운영자)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투쟁.
존경하는 국내·외 리스너 및 음악산업관계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운영자이자 유일한 노동자, 음악 프로듀서 단편선입니다.
지난 2024년 10월 24일을 기해 우리 오소리웍스가 5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에 이를 기념하는 담화를 진행합니다.
설립될 당시부터 어떤 계획이나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¹ ‘모두가 좋아하진 않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질’이라는 슬로건² 그대로 상업적인 가능성보다는 취향이나 뜻이 맞는 음악과 음악가들을 찾아 함께 기쁨을 만들어나가고자 했습니다.³ 계획적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난 5년간 운영해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50여 개의 타이틀을 발표했습니다.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나치게 실패하지도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성장하지도, 그만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만두고자 하는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으나 비록 소수일지언정 적잖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계속해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작고 인적이 드문 동네에서 별 볼 일 없는 식당을 운영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어쩌다 TV 방송에 소개되거나 우연히 유명한 유튜버가 들르면 잠깐 붐비는가 싶더니 금세 그대로 돌아가는. 주말 피크타임인데도 휑한 점포를 말없이 바라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식재료를 골라내는. 오랜만에 오는 타지 친구를 맞으려 일찍부터 장사를 접고선 술상을 준비하는. 미래에 대한 대단한 기대 없이도 무엇인가를 지속하게 되는 것 역시 삶의 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범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우리도 해왔던 일을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계속 합니다.
영세 자영업자의 5년 이내 폐업률이 절반이 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소리웍스의 5주년은 분명 경사이며 축하할 일입니다.⁵ 5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를 담아, 우리 오소리웍스는 매년 연말 진행되어온 역사와 전통의 단체공연 이어엔드파티를 한 회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대신 신년에 새로운 해를 맞는 공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⁶ 공연을 제외한 별도의 연말 이벤트도 계획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휴식을 위해서입니다.
오소리웍스에 관해 자주 질문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누가 소속되어 있는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소리웍스에는 운영자를 제외한 아무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속이 된다는 것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 사이에는 그런 계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소리웍스와 함께 작업물을 발표한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진 느슨한 커뮤니티를 공유합니다. 느슨할지언정 커뮤니티를 유지하는데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간 함께 작업물을 발표해주신, 그리고 커뮤니티 유지에 기여해주신 친구들—천용성, 전복들, 전유동, 후하, 소음발광, 보일, 선과영, 복다진, 연리목, 단편선 순간들—에게, 그리고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온 이권형과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티스트들, 오소리웍스 대부분의 작업에 함께 한 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엔지니어와 소닉코리아마스터링스튜디오의 강승희 엔지니어, 디자이너와 비디오그래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오소리웍스가 지난 5년간 함께 발표해온 음악들 중 선곡한 플레이리스트 ‘Works of OSORIWORKS 2019 - 2024’를 만들었습니다. 오소리웍스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공되니 즐겁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담화를 끝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사회가 불안합니다. 내일의 사회가 오늘의 사회와 같을지 확신할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음악 또한 계속될 것입니다. 무언가가 계속—또는 지속—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너무 당연해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우리가 가진 힘의 가장 근원에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평온한 연말을 보내세요. 그리고 신년에 새 마음 새 뜻으로 만나요.
모두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 운영자 단편선 드림.
¹ 오소리웍스의 설립은 2019년 6월 26일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를 천용성과 함께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앨범을 발표할 당시에는 구체적인 설립 계획이 세워지기 전이었다. 실제 개업은 사업자 등록이 완료된 2019년 10월 24일을 기준으로 한다.
² 해당 문구는 오소리웍스의 공식적인 슬로건이다. 그러나 운영자인 단편선은 “전 국민의 가슴 속에 인디팝을 뼈저리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내 한 몸 썩어 문드러져도 한이 없다.”라는 비공식 슬로건을 훨씬 애용하고 있다. 이현세 만화가의 오래된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대사에서 따와 변형한 것이다.
³ 이러한 운영방향은 오소리웍스의 수익율 저하의 근본 원인으로 프로덕션의 성장과 확산,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⁴ 싱글, EP, 앨범 등 형태를 구분하지 않고 1회 발표된 것을 각 1개의 타이틀로 계산.
⁵ 그러나 운영자이자 유일한 노동자인 단편선은 오소리웍스 설립 이래 단 하루도 이를 유일한 직업으로 가진 적이 없다. 즉, 투잡 내지는 쓰리잡, 또는 그 이상을 병행해왔다.
⁶ 이어엔드파티의 미진행, 그리고 신년공연 진행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멤버들 간의 스케쥴 조율 실패다.
01. 천용성 - 대설주의보 (2019)
02. 전유동 - 무당벌레 (2020)
03. 전복들 - We are Here and Everywhere (2020)
04. 후하 - 사랑의 주문 (2020)
05. 예람 - 여행 (2019)
06. 천용성 - 수몰 (2021)
07. 전유동 - 은행나무 (2021)
08. 후하 - 우표를 붙여요 (2021)
09. 소음발광 - 기쁨 (2021)
10. 보일 - 해피엔딩 (2022)
11. 선과영 - 밤과낮 (2022)
12. 전복들 - 다가당 (2022)
13. 전유동 - 호수 (2023)
14. PPS - 규암 (2023)
15. 이권형 - 공놀이 (2023)
16. 해파 - 못 먹는 고기 (2023)
17. 복다진 - 파도 (2023)
18. 소음발광 - 노랑 (2024)
19. 연리목 - 이럴 땐 (2023)
20. 단편선 순간들 - 음악만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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