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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Oct 29. 2019

혼자 사는 데에 드는 에너지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비혼을 적극 권장하는 엄마마저 가끔은 내게 "넌 어떻게 혼자 살려고 그러니~" 걱정을 하신다. 혼자 살기 참 부적합한 인간이다. 벌레라면 손톱만한 거라도 질색해 난리법석을 떨고 무서운 영화는커녕 무서운 광고만 봐도 그 날 잠은 다 잔 거다.(밤 10시 이후 글이 업로드된다면 아 얘가 또 겁도 없이 뭘 보다가 잠을 못 자는구나 하면 된다) 


뭣도 모를 때 누군가와의 결혼을 꿈꾼 적 있었다. 한참 고민했던 결혼의 장점은 내가 벌레를 잡지 않아도 되고 무서운 영화를 봐도 밤이 무섭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실낱같은 장점이다. 굳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럼에도 역시 혼자 사는 데에 드는 에너지는 만만치 않다.


모 개그맨은 성공한 후 보일러와 조명 값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집이 환하고 온기가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제일 공감했던 부분 역시 혼자 사는 데에 드는 에너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둡고 온기 하나 없는 집은 역시 삭막하다.(물론 지금은 기술이 좋아 집에 들어오기 전에 조명을 밝히고 보일러를 틀 수 있다. 비혼을 권장하는 기술의 발전^^) 혼밥 만렙이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같은 혼밥은 사절이다. 대충 때우는 한 끼가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고요한 게 싫어서 계속 재잘거리는 홈쇼핑이나 드라마를 틀어놓기도 한다. 이 모든 게 혼자 사는 데에 드는 에너지다.   


하지만, 그 대안이 결혼만 있는 건 아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들처럼 마음이 잘 맞는 비혼 메이트를 구해 같이 혹은 근처에 살 수도 있다. 제일 좋은 건 자매 모두 비혼 메이트인 경우다. 정말 완벽하다. 평생을 호흡을 맞춰왔으니 말이다. 


나의 경우 '혼자' 사는 것을 선택했기에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건 힘들다. 적정선의 거리가 필요하다. 근처에 살아서 무서운 밤엔 함께 자고 맛있는 건 나눠먹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 가끔 맥주가 땡기는 날엔 캔맥주를 부딪힐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어린 동생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 함께 비혼 메이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겠지.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비혼 메이트가 생길 거라 믿는다.


그러므로 비혼 여성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아예 비혼 여성 전용 빌라를 만들어 함께 살고 싶다. 더 나아가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로 이루고 싶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비혼 여성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아주 이타적인 마음으로 그들이 잘 살길 바란다. 그래서 좋은 선례로 남아 누군가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결혼 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혼자 사는 데에 드는 에너지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무서워 밤을 설치는 오늘도 혼자 살아 행복한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잠이 안 오니 불 환하게 켜놓고 이어폰 없이 제일 좋아하는 미드 한 편을 봐야겠다. 꽤 괜찮은 새벽 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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