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락울 Nov 03. 2018

나는 비혼주의자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나는 비혼 여성이다. 비혼. 즉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 비혼을 결정한 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면서 집안일을 대부분 도맡아하셨다. 그도 모자라 고된 시집식구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엄마를 보며 절대 결혼하지 않겠노라 결심했으니 아마 꽤 어린 나이였겠지.


인터넷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결혼하기 전 엄마를 보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글이었다. 많은 딸들이 "엄마 결혼하지 마" "엄마 나 낳지 마" "엄마 인생을 살아" "엄마 유학가" "엄마 꿈을 포기하지 마" 등의 댓글을 남겼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기 싫어. 그냥 혼자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까지 이르는 생각의 연결고리는 결코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기적이다. 저출산으로 겪게 될 것이라는 나라의 운명보다 내 행복이 우선한다. 고등학교 때 열혈 국사 팬이었던 내가,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독립운동을 하고 장렬히 죽겠다며 떵떵거리던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기적이라서 결혼할 수가 없다. 손해 보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이 남자에게 손해냐 여자에게 손해냐 하는 토론은 무의미하다. 원래 사람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니까. 난 내가 손해 볼 것 같아서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땐 막연히 결혼하지 않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막연한 생각은 계획으로 구체화되어간다.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하나하나 목록을 작성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집 아닐까. 내 한몸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집.


고등학생 때 나는 집을 너무 좋아했다. 그 정도가 심해져서 학교도 잘 가지 않았다. 졸업한 게 용하다. 그 후로 난 착실하게 집순이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런. 데


슬프게도 내가 자란 집을 제외하고는 집순이가 되고 싶어 지는 집을 만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여전히 내게 '집'이라 함은 '엄마 아빠 집'이었다. 하지만 비혼에 독립은 필수다. 독립하지 않은 비혼은 자유로움에 큰 제약이 걸릴 테니까. 그래서 빛나는 열아홉 살부터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를 집순이로 만들어 줄 집. 나의 드림 하우스.



출처=조선일보


가장 처음 드림 하우스로 떠 올린 건 타워팰리스였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 중 한 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타워팰리스다 하시는 말씀에 꽂혀버렸다. 그 후로 난 입버릇처럼 타워팰리스에서 살 거야-라고 말했다. 


지금은 타워팰리스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지 않지만 가끔 부자들은 아파트에 여러 시설을 함께 지어놓고 그들의 성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보며 그 성에서의 삶은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타워팰리스에 살기 위해서는 사업을 하거나 건물주가 돼야 한다는데 내 목표는 그 둘 모두이니 타워팰리스가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버린 거라고 우겨보자. (그도 아니면 딱 5백원이 모자랐다고 말하면 된다.)



출처=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캡쳐


두 번째로 떠올린 드림 하우스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나온 은수의 집이었다. 많은 여자들이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캐리의 집을 드림 하우스로 꼽는데 당시 미드와 친하지 않았던 나는 은수의 집을 드림 하우스로 꼽았다. 


사실 이 드라마는 내 인생 드라마도 아니고 심지어 끝까지 보지도 않은, 중도하차해버린 드라마였음에도 드라마 속 은수의 집은 내게 이상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다. 손 뻗으면 필요한 게 있지만 결코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그 나름대로의 어우러짐이 있는 그런 집. 흔히 볼 수 있는 집 같다가도 러블리하고 평범해 보이다가도 빈티지스러운 그런 집 말이다. 


결국 난 몇 년 전 자취를 하며 내 드림 하우스를 가졌다. 현실은 결코 드라마처럼 '적당히' 편리하면서 '적당히' 너저분할 수가 없었다. '엄청' 편하고 그래서 '엄청' 너저분했다. 결국 난 또 다른 드림 하우스를 꿈꾸게 됐다.



출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캡쳐
출처= 주부생활 (영화 '리틀포레스트')


나는 도시라고 하기엔 한적하고 시골이라고 하기엔 북적거리는 애매한 동네에 살았다. 차 타고 30분만 나가면 번쩍번쩍한 도시가 있었고 다른 방향으로 차 타고 30분을 나가면 너른 논밭이 펼쳐지는 시골이 있었다. 할머니 집이 그 시골에 있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할머니 집에 아궁이도 있고 큰 솥단지도 있었다. 정말 불을 때어서 방을 덥혔고 그곳에 현대적인 물건이라고는 냉장고와 tv밖에 없었다. 엄마가 땔감에서 쓸만한 나무 막대기로 사랑의 매를 만들던 장면은 아직도 눈물이 찔끔 난다.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야 있고 심지어 푸세식 화장실이어서 난 거길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차라리 요강이 나았다. 


하루라도 더 있기 싫었던 그 집은 효자인 아빠의 손에 산산이 부서졌고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모던한 주택으로 탈바꿈됐다. 공사한다는 얘길 듣던 어린 나는 방방 뛰며 좋아했었는데 다 커버린 나는 그 옛날 할머니 집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그 시작이 아마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다. 극 중에서 주인공은 아들과 딸을 키우기 위해 시골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허름한 집을 고쳐 나름대로 쓸만하게 만드는데 그 과정은 내 맘대로 스킵해서 머릿속에 남은 건 완성된 집이었다. 특히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돌멩이로 만든 싱크대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처음으로 간 오사카에서 일부러 한참 버스 타고 나가야 있는 시골집을 숙소로 정한 건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나 친절한 주인댁이 아니라 세면대가 '늑대아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돌멩이로 만들어져서였다. 


그 후 내 로망에 더 불을 지핀 게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다. 일본판 2편 모두 재미있게 본 터라 한국판이 개봉한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설렜는데 영화의 주제인 음식보다 집이 더 기대됐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리틀 포레스트' 속 집은 내 로망에 충실했다. 반듯반듯하지 않고 휘어진 나무로 지붕을 지지하고 한지를 대충 바른 것 같은 벽과 그 안에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나 러블리한 커튼까지. 햇빛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부엌에 설레게 되다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문제는 내 드림 하우스의 완성은 주변 경관조차 눈이 맑아져야 한다는 건데 난 시골에서 살 수 없는 DNA를 가졌다는 것. 시끄러운 게 좋다. 아이러니하지만 집은 안락해야 하며 밖은 시끄러워야 한다. 내 맘대로 영화나 뮤지컬, 연극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맛있다는 음식점은 나도 꼭 가봐야 하고 일주일에 세 번은 카페에 가서 죽치고 앉아있어야 기분이 풀린다. 


결국 내 드림 하우스는 나이가 먹어 이런 DNA가 수그러들 즈음에 실현이 가능하다는 소리. 그때까지 내 드림 하우스는 현실에 부딪히지 않아 계속해서 빛이 날 테니 이건 즐거워해야 하는 건가 싶다.








그럼 내 드림 하우스는 일단 보류.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꿈꾸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집은 꽤나 구체적이다. 


방은 좁아도 되니 거실은 널찍해야 한다. 거실이 좁으면 숨이 막히니까. 또 거실엔 카페에서 볼법한 원목으로 된 큰 테이블을 놓을 거다.(아빠의 취향에 따라 우리 집 식탁은 큰 대리석인데 거기에 부딪힐 때마다 뼈에 금이 간 것처럼 아파서 돌은 질색이다. 무조건 나무!) 


부엌 또한 답답하면 안 된다. 인덕션은 no! 인덕션이 사람 건강에 훨씬 좋다는데 나는 파란불이 올라와서 부글부글 끓이는 걸 보는 게 좋다. 가스레인지는 무조건 2구 이상! 내가 밥보다 더 자주 해 먹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2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물에 소금을 팍팍 넣어 면을 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팬에 올리브유 듬뿍 마늘 듬뿍 달달 볶아서 노릇노릇하게 튀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은 18평 정도가 좋겠다. 너무 넓어도 청소하기가 번거로우니까. 18평이라고 내가 매일같이 반짝반짝 청소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 청소는 최선을 다하되 한 달에 두 번은 전문 청소업체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끔 집 청소해주고 설거지해주고 빨래해줄 건실한 청년 하나를 들이고 싶다는 실현 불가능한 생각을 한다. 역시 주부는 직업 중 하나로 인정받음은 물론 시급도 많이 쳐줘야 한다.) 


18평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이유는 우리 가족이 처음 살았던 집이 다세대 주택인 명x주택 3층 18평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의 2배가 넘는 집에 살고 있는데 난 아직도 엄마한테 그 집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정말 그 집이 좋은 건지 그 집에서 함께 한 추억이 좋은 건지는 몰라도 내게 그 집은 완벽했다. 지금 집은 방 4칸 중 2칸이 창고로 쓰인다. 18평에 창고 없이 투룸 온전히 내 생활 반경으로 만들어야지. 역시 그게 낫다.


TV는 필요 없다. 지금도 TV는 잘 보지 않는다. 컴퓨터로 드라마 영화 예능 모두 스트리밍 할 수 있는데 왜 TV가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빔프로젝트를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난 보지 않아도 항상 소음을 틀어놓는데 TV는 너무 시선을 끌기 때문에 별로다. 거실 넓은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잔잔히 보지도 않는 소음을 만들어내고 작업하는 걸 상상하면 정말 기분 째진다.


거실의 창은 널찍하고 햇빛이 잘 들어와야 한다. 아마 하루 종일 암막커튼으로 가리고 살겠지만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선크림을 잔뜩 바른 후 커튼을 쫙! 걷고 햇빛을 집안 가득 흠뻑 묻혀야 하니까. 


화장실에는 욕조가 필수다. 난 항상 욕조에서 샤워를 한다. 엄마에게 욕조 막힌다고 등짝 스매싱을 당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막히지 않았다. 수챗구멍에서 머리카락을 꼭 빼주는 일이 귀찮아도 샤워가 기분 좋은 일이 되어주니 그 쯤은 감당할 수 있다. 세면대는 새하얘야 한다. 집을 구할 때 미리 집 사진을 보면 꼭 세면대가 누렇거나 심지어 끔찍한 체리색일 때가 있다. 으으. 너무 싫다. 새하얘야 한다. 비록 관리가 어렵더라도. 가끔 호텔에서 건식 화장실을 사용하면 최고다! 싶지만 그 화장실을 관리해줄 하우스키퍼가 없으니 이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자. 


그리고 세탁기는 무조건 통돌이. 이유는 모름. 그냥 통돌이가 좋다. 돌돌돌 빨래를 할 때마다 시끄럽게 제 몸까지 흔들어대는 게 좋은가? 그런가 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