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것은 도시가 아니라 시선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남겨두는 삶

by 유현수

몇 주 전,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특별히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이라기보다는 회사 내 금융산업, 정확히는 자산운용사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팀의 연간 계획을 세우는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부서에서 자산운용사를 담당하는 팀은 규모가 크지 않아, 내가 속한 프로젝트 팀 대부분이 이번 일정에 함께 움직였다.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방문이었지만, 오랜만에 와서인지 뉴욕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늘 그렇듯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화려한 전광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파 속에 있으면, 마치 도시 전체가 쉬지 않고 호흡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처음 몇 번의 뉴욕은 압도적이었다. 가족이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을 다닌 인디애나,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시카고와 비교하면 규모도, 속도도, 밀도도 전혀 다른 도시였다. 특히 동네마다 전혀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첼시다. 허드슨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어느 날의 바람과 분위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뉴욕을 떠날 때마다 결론은 늘 같았다. 여기는 살기보다 놀러 오는 도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높은 물가, 복잡한 인파, 그리고 도시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 같은 것들이 어딘가 버겁게 느껴졌다. 출장으로 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며칠간 도시의 에너지를 즐기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삶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출장은 달랐다. 뉴욕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정은 이전보다 더 짧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미드타운에서 보냈고, 새로운 경험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이제 뉴욕은 더 이상 '놀러 가는 도시'가 아니라, '살아볼 수도 있는 도시'가 되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큰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조용히 변한다. 뉴욕에 대한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은 도시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를 판단하는 나의 기준이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도시를 선택할 때 물가와 커리어 기회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는 기회가 많지만 생활비가 부담스러웠고, 시카고는 비교적 합리적인 물가에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시카고를 선택했다. 그것은 최선의 가늠을 통해 도달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판단 기준 자체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을 느낀다.


사람을 만나는 기준도 비슷하다. 연애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그리게 된다. 어른들이 말하는 "많이 만나 봐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경험을 늘리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여러 번의 스케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바뀌는 것은 사람 자체라기보다 생각과 기준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면 선택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지면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 변화가 반복되면, 결국 사람도 달라진다. 우리도 모르게 변화하는 생각의 힘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시카고에서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대화도 비슷한 변화를 만든다. 우리는 커리어, 연애, 미래 같은 주제로 자주 대화를 나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주제를 놓고도 바라보는 시각이 꽤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단순한 개인차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다름이 내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기준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경험한다. 사람은 혼자서만 변하지 않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도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에 대한 판단을 조금 더 천천히 내리고 싶어진다. 우리가 보는 누군가의 모습은 그 사람이 지금 서 있는 시간과 상황 속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도,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변화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지금의 나는 30년 뒤의 나와 다를 것이고, 지금의 기준은 언젠가 다시 수정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을 영구적인 형태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그래서 나는 기대하기보다 가능성을 남겨두기로 한다. 지금의 모습은 그저 '지금'의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사람을 바라볼 때 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관계는 훨씬 넓어진다. 예상하지 못했던 연결이 만들어지고, 뜻밖의 배움을 얻기도 한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 것. 변화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것.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수정되는 초안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계속 고쳐 쓰는 문장처럼.


이번 뉴욕 출장이 내 삶을 바꿔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다. 도시는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지면 같은 풍경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변화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아주 조용하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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