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처럼 시작되는 모든 비전에 대하여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시작은 허풍일지라도, 끝은 아니라는 거지.”
극 중 주인공 사라 킴은 사업가와 사기꾼의 차이를 이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말하는 시작. 그 시작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누군가는 사업가가 되고, 누군가는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 설득력 있는 말이다.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비전이 있다. 그 비전이 크든 작든, 처음에는 대부분 현실보다 조금 과장된 형태로 등장한다.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마치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아직 증명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고, 어떤 이들은 그저 마음속에 간직한 채 지나가 버린다. 결국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은 시작의 모습이 아니라, 그 시작이 어떤 끝으로 이어지는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사업가와 사기꾼의 차이라기보다,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에 더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들의 면접 장면을 떠올려 보면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대학을 막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는 아직 내세울 만한 전문성이나 경력이 많지 않다. 이력서를 가득 채운 인턴 경험이나 학교 활동도 실제 업무 능력을 완전히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면접에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든 내가 더 가능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몇 가지 경험과 가능성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나면, 비로소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과정이 시작된다. 면접에서 말했던 가능성이 실제 능력이 되는 과정. 내가 말했던 비전이 현실이 되는 과정.
면접에서의 모습이 허풍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기의 우리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능성이 진짜가 되는지, 아니면 그저 말로 남는지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면접장에서의 모습은 어딘가 사라 킴이 말한 ‘시작의 허풍’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직장에서의 성과가 우리를 사기꾼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시작 이후의 과정이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꿈꾸는 미래가 있다. 커리어적인 미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 혹은 사회 속에서의 모습. 어떤 형태이든,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전을 세우고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더라도 결국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미래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현재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인가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수 있는지, 혹은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이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시간이, 그 비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한 노력 속의 현재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의심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미래로 나를 데려다줄 것인지. 지금 감당하고 있는 시간과 무게가 과연 의미 있는 과정인지.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으니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허풍을 부려도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완전히 증명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하나다. 열심히 꿈꾸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마치 가능한 일처럼 믿어 보는 것. 그 허풍 같은 비전이 결국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지금의 모습이 우리의 가치를 완전히 정의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온 과정과, 그 과정이 만들어 낸 끝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대개, 조금은 과장된 믿음과 조금은 뻔뻔한 비전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그 비전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힘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허풍처럼 들릴지라도, 끝이 그것을 증명해 줄 수 있다면. 그 시작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