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

성장의 가장 솔직한 형태

by 유현수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온 이후로 나는 많은 일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스스로 찾고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한국의 기본 교육 시스템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과는 달랐다.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나의 커리큘럼이 달라졌고, 대학 진학 역시 얼마나 찾아보고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선택의 폭이 크게 달라졌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던 시기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대학에 와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만큼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도 꽤 크게 나타났다. 당시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해오는 일이 더 익숙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쓴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하고 있다”거나 “알아서 잘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사이에도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중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조금이나마 더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길이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결과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의 생각과 선택에 대해 사려 깊은 반대나 비판을 건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카고에 온 뒤, 나는 처음으로 나를 솔직하게 비판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몇 살 위였던 형이었는데, 같은 회사에 다니고는 있었지만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친하게 지내는 형동생 관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형은 종종 내 말이나 행동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말은 잘하는데,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말은 유창하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본질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표현은 번듯한데 정작 그것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들은 말을 잘 정리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 누구도 나에게 던지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나 생각의 구조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의견을 건넸다. 처음에는 꽤 낯설었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들은 점점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받는 피드백은 대부분 업무에 관한 것이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조언이거나, 결과를 개선하기 위한 피드백이다. 하지만 형이 건넸던 말들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회사에서의 나’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낯설었던 그 비판들이 점점 반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그런 말을 듣고 상처받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너무 직접적이거나 노골적인 비판이 아니냐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히 보였다. 그 말들 뒤에 형이 얼마나 나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래서 그 말들이 결코 서운하게 들리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 보니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비판을 건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여유가 많지 않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낄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괜한 말로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상처가 될까 봐 우리는 종종 비판 대신 위로를 선택한다. 반대보다는 공감을 택하고, 날카로운 질문보다는 부드러운 격려를 건넨다. 물론 그것도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그런 배려가 상대방의 성장을 위한 기회를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곁에는 자신에게 다른 시각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로의 생각에 사려 깊은 반대와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사고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 말이 날카롭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 덕분에 생각의 빈틈을 발견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형을 만난 이후로 나는 그런 ‘서포트 팀’이 생겼다고 느끼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내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어떤 말이든 표현 방식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진심이 없는 비판은 쉽게 공격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각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진심이 담긴 비판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 곁에 사려 깊은 비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꽤나 감사한 일이다. 그 사람은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당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를 소중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건네는 말들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계 중 하나는, 서로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때로는 불편하게 들리더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알아볼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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