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정말 그러고 싶을까
28일 김복동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가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93세, 94세.
각종 언론사에 실린 기사 내용에 따르면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고 김복동 할머니와 고 이모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했습니다.
정의연에 따르면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한 김복동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습니다. 약 8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 끌려다니며 '성노예'로 피해를 당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하며 본격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걸었습니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 참석, 위안부 피해 증언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에게 당한 피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1925년생 이모 할머니는 17살이던 1942년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다 군용 트럭에서 내린 군인에게 동료 2명과 함께 납치됐습니다. 이후 또 다른 트럭을 타고 있던 여성 10여 명과 함께 강제로 배에 태워져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가 고초를 당했습니다. 이모 할머니는 그곳에서 다시 만주로 끌려간 뒤 위안부 피해를 당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겨우 겨우 귀국했습니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는 2012년 3월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여성들을 돕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여성의 인권을 위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일본에게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우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67세부터 일본성노예 생존자로서 30여 년을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아오셨습니다.
고 김복동 할머니와 고 이모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오늘 한국에서 SNS를 사용했거나 인터넷을 봤거나 TV를 봤다면 무조건 접했을 소식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전쟁 당시 일본인에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겠지.
너무너무 시간은 흘러만 가고 언제까지 버티고만 있을지 정말 영원히 사과하지 않을 건지, 이미 저지른 죄에 더 큰 죄가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건지.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을 왜 숨기려고만 하는지 정말 이해도 안 가고 기가 막힌 일이다.
평상시에는 나 사니라 바빠서 신경도 못쓰다가 별세 소식이 들리니까 이제서야 관심 갖는 척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그래도 이렇게 뭔가 나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고 김복동 할머니와 고 이모 할머니가 열심히 싸우시다가 힘내서 여성 인권 운동을 하며 살아오시다가 별세한 날. 나도 그녀들을 생각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많이 남겨지는 기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본도 더 오랫동안 그 일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내 글 하나가 아주 약간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