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님의 서바이벌 챌린지 2기 생존 후기
한 달 동안 그림만 그리는 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다 왔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문님이 진행하는 서바이벌 챌린지에서 생존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나의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각설하고 전후 그림부터 비교하면 지푸라기 그리던 사람이 한 달 만에 인간을 그려냈다.
서바이벌 챌린지는 30일 동안 매일 3장씩 그림을 그리는 챌린지이다.
이 챌린지의 무서운 점은 인증에 실패하면 그 즉시 강퇴이므로 생존을 위해 매일 그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번 기수는 1회 실패 시 2배 미션을 내고 2회 실패 시 강퇴로 룰이 유연했지만, 1기 당시에는 오문님 본인조차 1회 미인증 시 호스트 권한을 넘기고 즉시 탈락한다는 무시무시한 룰이 있었다.
사실 1기 모집 스토리를 새벽 3시경 실시간으로 봤지만 그땐 매일 자유주제로 3장이었다.
'내가 무슨 그림을 세장씩 한 달이나 그릴 수 있겠어...'라며 머뭇대는 사이에 모집이 마감되어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2기를 열면서 '인체 도형화'라는 일종의 커리큘럼이 생겼다.
사람 잘 굴리기로 정평난 오문님의 힘들기로는 더 소문난 서바이벌 챌린지였기에, 당장 그림 스킬이 나에게 절실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이 열린 것을 보자마자 입금부터 해버렸다.
왜인지, 지금이 아니면 작정하고 그림 그릴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방식은 간단하다. 매일 세 장의 그림을 그리고 노션에 올려 인증한다.
새벽 4시까지가 마감 기한이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부랴부랴 새벽에 그려 내기 일쑤였다.
1일 차부터 16일 차까지는 인체 도형화 관련 자료가 주어져서 보고 따라 그리다가, 이후에는 자료 복습 또는 원하는 크로키 모델을 보고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루에 최소 3장, 때때로 4장도 그렸으니 정말 최소 100장 이상은 그렸다.
후기를 쓰려고 앨범에서 작업물들을 찾는데 왜 이렇게 스크롤을 올리고 올려도 끝이 없는지, 결국 앨범을 하나 만들어야만 했다. 만들고 보니 단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지만 159장이더라.
미션으로 그렸던 그림들 추리고 추렸는데도 첨부하니 아래처럼 끝이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1일 차에 그렸던 그림을 17일 차에 다시 한번 그려보았을 때였다.
똑같이 가장 왼쪽의 원본을 보고 뼈대(러프)를 그린 다음 가장 오른쪽에 완성본을 그렸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1일 차의 그림은 크기, 구성 그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다.
저게 사람 몸이겠거니.. 하고 따라 그리기에 급급하나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17일 차, 복습을 위해 같은 그림을 켰는데 참 신기했다.
일단 인체 부위들을 한 번씩 다 훑고 온 효과를 느꼈다. 저 부분이 어디에 해당하고, 왜 저렇게 그려졌고, 왜 이런 모양인지 대략적인 이해가 되었다. 앞에서 1일 차~16일 차는 인체도형화 자료를 그렸다고 했는데 사실 이 기간 동안에는 자료가 이해되든, 이해되지 않든 따라 그리기에 급급한 시기다.
그래서 따라 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정말 모르겠다.' 이 생각을 매일 달고 사는데, 17일 차에 같은 자료를 보면서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경험을 하니 '아, 내가 그동안 이걸 한 거구나!'를 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른쪽 17일 차의 그림에서는 파란 선으로 러프를 그릴 때부터 어느 정도 형체가 잡혀있고 최종본을 그릴 때에는 거의 선 따기 수준으로 완성한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당연하지만, 매일 3장을 그려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사람 잘 굴리는 오문님은 완급조절도 기가 막히게 하셨다. 중간중간 게임으로 리프레시 이벤트를 열거나, 미션 휴식권을 걸고 팀을 짜서 그림 많이 그리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피드백이 필요해 보이거나 요청이 있는 경우 구글밋으로 단체 과외까지 진행해 주시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오문님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수무님도 함께 미션을 진행하면서 챌린저들의 그림을 다시 그리는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시기도 하고, 준비 중인 인스타툰 연출 강의 베타버전을 챌린저들에게 제공해주기도 하셨다.
그냥 단순히 그림 그리는 챌린지 그 이상이었기에 챌린지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될 수밖에 없었다. (뭐든 파는 오문님 덕에 다 같이 깜고 이모티콘을 사고 사주 공구까지 한건 안 비밀)
또, 챌린지는 러닝메이트 제도로 운영되어서 메이트 간에 서로 응원을 해주기도 하고 호스트인 오문님, 스텝인 수무님도 피드백과 따뜻한 말을 아낌없이 주셔서 지칠 즈음 힘을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챌린지 참여를 마음먹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가 얼마나 얻어갈 수 있을까?'였다.
그건 이 챌린지 자체에 대한 의심이 아닌 나에 대한 의심이었다. 인스타툰을 그리고는 있지만 대단한 인체 실력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결코 작지는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가며 한 달 동안 그림 그리는 경험이 나에게 필요할까?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내가 정말 그림실력에의 성장을 한 달 만에 이뤄낼 수 있을까? 생각이 참 많았다.
미션을 하다가도 12일이 넘어갈 즈음부터는 나름의 고비도 왔다. 매일 그리고는 있는데 이게 잘하고 있는지, 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나날의 연속.
위 그림들에도 빼곡히 적혀있지만 나는 '왜?'라는 질문을 참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릴 때의 '왜'는 내가 따라 그린 그림이 왜 이렇게 원본과 다른지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의 도형은 왜 이렇게 나누어진 건지, 실제 뼈는 어떤지, 내 그림이 어색하면 왜 어색한지, 원본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등등 틀린 그림 찾기 하듯 의문이 드는 부분은 전부 기록했다.
그게 타고나길 잘 그리는 재능이 없는 내가 배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는 좋게 말하면 분석이요 나쁘게 말하면 내 그림의 단점만을 자세히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칠 점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거나,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힘든 것일 때에는 막막한 괴로움만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순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남은 증거들이 내가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실체 없는 인정은 마치 정신승리와 같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서바이벌 챌린지는 미션을 하면서 매일매일 3장씩 쌓여간 그림들이 하루하루 달라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매일 그날의 그림만 바라보느라 몰랐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눈앞에 쌓여있으니 그 자체로 근거가 되고 힘이 되었다.
그리고 확신 넘치는 답도 주었다.
'세상에... 고작 보름 만에, 한 달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 의문에.
서바챌은 단순히 그림 그 이상을 알려준 챌린지였다.
이렇게 무언가에 몰입해 본 적이 언제였지? 하는 그 감각. 몰입하면 단기간에 상상 그 이상의 성장을 해낼 수 있다는 그 경험. 아, 나 이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하는 효능감.
그림 실력이 성장한 것도 놀라운 성취이지만 이런 몰입의 경험은 그 자체로 귀하다. 삶에서 흔들리는 순간이 올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자리를 빌려 챌린지를 함께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호스트인 오문님, 스텝으로 활약해 주신 가오수무님, 함께한 2기 챌린저분들 (갓생비지, 김줄리, 메지, 미몽, 소영, 쏘, 지지, 쭈꾸리, 토우, 호이)과 각종 이벤트로 활약해 주신 1기 멤버 끼예히, 미녶, 와니 모든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운 한 달이었다.
3기는 기약 없이 사전 알림 신청만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 또 이 멤버들과 함께할 날이 오길 바라며, 한 달 만에 그림 실력이 상승하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은 당신께 이 챌린지를 적극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