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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새 Jun 16. 2024

완전한 고요는 없었다.

그저 어느 새벽의 일기

여느 때와 같은 새벽. 문득 모든 것이 소란스러웠다.


내 손에는 릴스가 재생되는 핸드폰이 들려있었고,

아이패드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고,

노트북에는 해야하지만 외면중인 일이 띄워져 있었다.


머릿속은 덩달아 소란스러웠다. 셋 중 그 어디도 쳐다보고 있지 않던 내 머리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화요일까지 하기로 했지만 시작도 하지 않은 일.

오늘 했던 미팅에 대한 복기.

아침에 일어나면 응대해야 할 고객의 메시지.

내일 올지 안올지 모를 친구의 방문.

다음주 월요일 다시 시작될 팀플.

쓰다 만 후기글.


무언가 하나에 집중도 하지 않은 채 소란스럽기만 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이패드의 영상을 껐다.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새벽이 고요해졌다. 신기한 것은, 내 머릿속도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내 눈과 귀의 분주함을 나의 바쁨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말인 즉, 오늘 하루종일 마땅히 한 일 없이 소란스럽기만 했다.



밤 9시에 일정이 있었다.

나는 낮 12시에 거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더니 밤 9시가 되어 있었다.

일련의 미팅이 끝나니 자정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새벽 세시가 다가오고 있다.


눈을 감았다 뜬 듯한 그 찰나의 시간동안 내가 한 것은 노트북을 켜두고, 패드로 유튜브를 보며, 폰으로 게임을 한 것 뿐이었다. 하루종일 머릿속이 그리도 복잡했는데 정작 내가 한 것은 눈과 귀를 요란하게 하고 그것이 나의 바쁨이라 착각하는 일 뿐이었다.


새벽이 고요해지니 에어컨 소리마저 거슬렸다. 에어컨을 껐다. 좀 전까지 창문을 때리던 비도 어느새 그쳤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주변이 고요하고 머릿속도 고요해졌다.

이런 고요를 언제 가져봤지? 새삼스럽고도 신기한 감각이었다.. 정화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하나 둘 말을 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종일 뭘 했지? 내일 할 일은 대비가 되어 있나? 해야하지만 미룬 일이 몇개지? 기한 안에 끝낼 수 있나? 다시 월요일이면 외부 일정들이 나의 시간을 놔주지 않으려 할텐데 대비는 되어 있나? 그 전에 마쳐야 할 일들이 있을텐데, 하루의 시간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나?


결국 완벽한 고요는 없었다. 하지만 낮의 시끄럽던 머릿속과는 달랐다.

막연히 바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바쁜 일들을 어떻게 해낼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 의지대로 생각을 하나하나 찾아 꺼내고 닦고 붙들고 있다는 느낌만은 달랐다.




하는 것 없이 시간은 축내면서 해야 할 일은 외면하는 것은 왜인가? 바쁘지 않은데 왜 나는 바쁜가?

최근에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지금도 그렇다.


결국 나를 바쁘게 한 것은 걱정만으로 가득 찬 머릿속과 주변의 자극들이었구나 싶다.

그저 배경으로 틀어두었다고 생각한 영상들이, 그 불빛과 소리들이 내 시간을 침범하고 있었다.

내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때에도 잠들어있던 생각들을 추천 영상마냥 마구 떠오르게 만든 것이었다.



이왕 완벽한 고요라는 것이 없다면, 온전히 내 의지대로만 고요하지 않고 싶어졌다.

빛도, 소리도, 무엇도 없는 곳에 편히 기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에만 귀기울이는 시간을 종종 가지기로 마음먹은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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