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니즈와 액션에 대한 고찰
약 24시간 전,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슬랙(slack)에 글을 하나 올렸다.
최근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프로필에 산타모자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나도 바꿀까... 하다 귀찮아서 놔두고 있었는데, 어제 심심한 김에 산타 모자와 루돌프버전을 그려 바꾸었다.
바꾸고 보니 문득 어디에선가 본 댓글이 생각났다.
"프로필사진의 산타모자는 바꾸는 어플이 있는 건가요?"
"아니요~그냥 그린 거예요 ㅎㅎ"
"아 그렇구나... 어플이면 저도 바꾸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ㅠ"
어라? 우리 커뮤니티 멤버분들 중에서도 산타모자를 쓰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
마침 심심하던 차에 옳다쿠나 글을 올렸다.
한두 분 정도만 신청해 주셔도 좋고... 내일이면 새로운 글에 묻히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총 열네 건의 요청을 받았고, 여러 버전으로 꾸민 것을 포함하면 스물다섯 개의 프로필 사진을 그렸다.
약 24시간 동안 스레드에는 86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지금도 실시간으로 신청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왜 이렇게 내 예상수요와 실제가 많이 다를까? 나름대로 이유를 파악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무료 이벤트라는 점 이겠지만, 아무리 무료여도 수요가 없으면 반응도 없다는 것이 나의 기본 전제이다.
물론, 구구절절하게 적을 필요도 없이 막상 신청 이유를 까보면 '그냥 재밌어보여서'가 대다수일 수 있다.
붙잡고 여쭤보진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 적어보고싶은 건 실제 신청 이유를 추측하기보다 내가 예상한 니즈의 실재와 재밌어보인다는 그 마음이 어떻게 실제 액션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장치들에 대한 분석에 가깝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프로필 사진을 꾸미고자 하는 니즈에 대한 가설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산타모자가 달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꾸미지 못한 분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모자를 그려드린 멤버분이 나를 샤라웃 해주시며 작성해 주신 내용에서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의외였던 점은 인스타툰을 그리는 작가분들도 신청해 주셨다는 것.
신청주신 분들 중 유니스 님, 모모님, 쏘님의 경우 프로필사진 캐릭터를 본인이 직접 그리셨고 인스타툰까지 연재하시는 분들인데, 이벤트를 보고 '오 나도 그려야지'가 아니라 프사를 꾸며달라고 신청을 해주신 것이다.
물론 내가 그릴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의 그림을 받아보는 것은 다른 재미라 생각한다.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의외의 현상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꼽아보라 한다면 아래 요인이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신청 방법이 간단하다. 댓글로 프로필사진을 올리면서 산타, 루돌프 중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액션에 필요한 단계가 매우 적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아마 가장 어려운 단계는 프로필 원본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어렵다면 차선책이 있다.
화질은 조금 깨지지만 슬랙 프로필은 조금 크게 볼 수가 있다. 그걸 캡처해서 사진만 잘라낸 뒤 빈 캔버스에 붙여 넣으면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약간 뭉개지긴 하겠지만, 프로필사진으로 설정하면 슬랙도 인스타도 결국 작게 보이기 때문에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가끔 인터넷에서 무료 이벤트를 보고 참여하려는데 회원가입을 요구하거나 신청을 위한 방법이 수고로울 때, 그런데 보상이 그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을 때 무료임에도 이를 쉽게 포기하곤 한다. 이렇듯 나도 그려달라고 해볼까? 마음먹은 뒤 실제로 요청하기까지 단계가 적고 그 방법이 쉽기 때문에 실제 액션으로 전환이 잘 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이벤트를 열면서 댓글로 프로필사진과 신청내역을 작성해 주실 것을 요청드렸고, 완성본도 댓글로 태그 해서 전달드렸다. 가벼운 이벤트로 연 것이니 당연히 의도했던 부분은 아니나, 결과적으로는 신청해 주시는 내용과 결과물, 그에 대한 신청자의 반응까지 한 게시물의 댓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시스템이 된 것이다.
후기, 즉 샘플에는 실물 사진에 그린 것도 캐릭터에 그린 것도 있다. 배경색을 바꿔드린 분도 있고 아무래도 만족스럽다는 반응들 뿐. 사진을 꾸며드리면서 하나만 드리기보단 좀 더 예쁜 버전이 떠오르면 추가로 그려드리기도 했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원래 프로필사진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지였다. 특히 캐릭터로 신청해 주신 분들은 기존에 사용된 브러시 느낌과 색상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신청하는 곳에 다양한 케이스에 대한 결과물이 쌓여있으니 내 프로필 사진에는 어떻게 나올지 상상 가능하고 정확힌 모르겠더라도 대충 이 정도면 만족스럽겠다, 아니다에 대한 판단이 쉽게 서게 된다. 그러니 신청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도 쉽게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스레드에는 신청은 하지 않지만 구경하시던 분들의 댓글도 달리고 구경하시다가 신청까지 하는 분이 생기기도 했으니, 실시간으로 쌓이는 후기가 나도 해볼까? 란 생각이 쉽게 들도록 한 것은 아닐까.
슬랙에는 채널이 여러 개가 있는데, 위에 올린 서현 님 외에도 쏘님이 샤라웃 채널에서 한 번 더 언급해 주셨다.
게다가 파란 글씨 부분에 게시글 링크를 달아주시기까지! 실제로 글이 올라온 직후 10분 만에 네 분이 추가 신청해 주셨으니 샤라웃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슬랙에 채널이 60개 이상으로 워낙 많아 모든 채널의 글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보니, 이벤트 글을 놓쳤지만 샤라웃을 통해 보게 된 경우도 있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진을 받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인스타 메모 기능을 활용해 언급해 주셨다.
거기다 스토리를 예쁘게 꾸며 태그 해주시기도 했다.
스토리를 내 계정으로도 퍼 날랐더니 요 스토리들을 보고 꾸며줄 수 있냐고 디엠 주신 분들도 꽤 계실 정도! 어디에서 유입이 될지 모르니 여러 군데로 콘텐츠를 유통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인 걸까 싶었다.
많아야 두세 명의 참여인원을 가정하고 열었던 반짝 이벤트. 하루 만에 이렇게나 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현재 들어온 추가 신청까지 따져보면 18명이니 예상 수요를 두 명이라 했을 때 900%로 완전 초과 달성이다.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라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으며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어 졌고, 분석해 보았다.
요약해 보자면
첫째, 실제로 프로필 사진을 꾸미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에게서 수요가 있었고
둘째, 신청 방법이 간편해 흥미를 보인 사람들 중 다수가 실제 신청자로 전환되었으며
셋째,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결과물과 만족후기를 통해 너도나도 해볼까?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넷째, 슬랙 타 채널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가 유입이 발생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을 것이다.
번외로 재미있었던 지점은 내가 마음에 드는 그림과 프로필 사진으로 선택된 그림이 항상 같진 않았다는 것.
정말 잘 모르겠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두 가지 그림을 그려드렸다. 작은 산타모자와 큰 산타모자처럼. 보통은 하나를 그리다 더 나은 그림이 생각나서 그리는 것이기에 나에겐 더 마음에 드는 버전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내 생각에 더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은 것과 실제로 프로필사진이 된 것은 반은 같고 반은 달랐다.
모든 선택의 기준이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들은 케이스는 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와 같았지만 프로필 사진으로 했을 때 생각보다 모자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였다. 역시, 이래서 나의 예상과 실제 소비자의 선택이 같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일까. 타인의 반응을 예상하려고 아무리 애써봐야 맞을지 틀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지레짐작에 불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 예상이 실제 수요와 달랐다 해서 낙담하기 보다 맞추면 혼자 즐겁고, 틀리면 '역시 인간은 재밌어.'의 마인드로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쪽이 바람직한 방향일까 싶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HOC 로고를 꾸몄는데 너무 고맙다며 가영님으로부터 커피와 케이크 기프티콘을 받았다.
좋아서 한 이벤트에 선물이라니 어쩐지 염치없게 느껴졌지만 거절은 않은 나 :) 감사히 받는 것도 중요한걸!
그냥, 이렇게나 좋아해 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이벤트를 신청해 주시고 또 만족스럽다며 너무나 많은 칭찬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산타모자공장을 다시 돌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