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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Nov 12. 2020

이별 후에 남은 것들

눈물 말고


다 그러하겠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우리의 몸은 다 허상이고 지나간 일은 이미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런데 이별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별 직후, 교과서에 실린 아주 오래된 시가 떠올랐다. 이별을 맞은 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이 시를 진정으로 느낀 것이다. 밑줄 긋고 외우고 시험 준비한 게 아니라.



님의 침묵(1926)/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님은 승려였던 시인임을 감안해 불교에서의 절대자를, 광복을, 사랑하는 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님이 떠나간 일은 뜻밖의 일이 되고 슬픔이 차오르지만, 희망의 힘을 내어 보겠다는 화자. 님을 보냈지만 보내지 아니했다는 역설적 표현으로 다시 만날 것을 희구한다. 하지만 님은 현재 침묵하고 있다. 실제 이별하고 난 후에 떠나간 사람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추억하고, 기억하고, 잊고, 새출발을 다짐하고, 감정의 요동을 감당하는 것이 전부다.    


사귀는 와중에는 헤어지고도 싶고, 맞는 길일까 고민하면서도, 정작 완전한 분리가 명백해지면 너무나도 슬프고 감당하기 버거워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면 다시 상대를 붙들고 싶고 다시 안정이라고 믿었던 기존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을 쏟는다.


이별은 잃는 일이다. 추억도 존재도 미래도 모두 소멸되고 단절된다. 영원할 거라고 믿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남들이 겪는 일이 내게도 이렇게 쉽게 벌어질 수 있는지 자각하면서 슬픔과 고통을 견디어 간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등장할 시간이다. 약을 바르는 중이다.

이별 후에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기에, 그리고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기에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되돌아봄/명상/마음공부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어떤 인간일까. 나는 왜 되풀이하는가."



내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헤어짐은 상호 간 합의의 어긋남으로 벌어진 일이므로,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맞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나를 돌아보는 것도 맞다. 과연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할 만큼 성숙된 존재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나를 알아야만 조절을 통한 유지와 합일이 가능하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삶과 생각이 있으므로 부딪히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걸 잘 해결하는 것은 두 사람의 몫인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는 성찰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관심 갖던 주제는 명상이었다. 일정 시간 동안 정지된 상태에서 호흡에만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명상은 충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충분히 보려고 노력은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얼만큼 성장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트루 컬러라는 게 있겠지만, 내 단점을 채찍하기 보다는 장점은 추켜 세우고 모가 난 부분은 둥글게 해보고 싶은 게 바람이다.




체중 감량



헤어지기 이전부터 살빼기는 시작했다. 그런데 다이어트에 마음 고생만큼 효과 직빵은 없다는 말도 있듯, 기운이 없고 힘이 드니 식욕이 돋지 않았다. 나는 잘 먹고, 잘 소화하고, 식욕도 좋은 사람이라 입맛이 없다는 말, 그거 잘 모른다. 네? 아파도 입맛은 좀 있던데요? 하여간 조바심이 나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선을 타고 있으니, 슬슬 살이 빠졌다. 뭐, 겸사겸사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다이어트 겸 이별 후유증이랄까.




명랑핫도그



갑자기 생각난 일인데... 핫도그를 좋아해서 명랑핫도그 가게를 지나가면 하나 먹어보라는 권유에 잠깐 고민하다 늘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별 후에 핫도그 먹을 일도 없어졌다.




위궤양



한동안 괜찮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속이 쓰렸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는 생각과 그의 존재가 굉장히 미화되다 보면 내 속이 나를 긁어댔다. 가슴이 화끈거렸고 목구멍으로 위산이 역류했는지 따끔거렸다.


"그래도 모닝커피는 포기 못하겠어. 커피 없인 출근이 어려울 것 같아."


커피가 내 삶에 양립하면서도 위가 나아질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양배추 제품을 먹는 일이다. 양배추즙, 양배추청, 양배추환... 매일 세 번 양배추즙에 양배추환을 먹거나, 양배추즙을 먹고 양배추청을 먹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먹고 있다. 양배추 제품덕이었을지 속이 좀 편안해 진 것 같기도 하다.


양배추즙은 냄새나 맛이 역해서, 한포 들이키다 보면 몸이 배배 꼬여 버린다. 그러나 아픈 자는 별 수 없다. 마시고 또 마시니 역시 적응하고 있다.



양배추 트리오




리셋과 출발



모든 것은 파괴를 통해 새로 지어진다. 기존 질서가 무너져야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 파괴는 그러므로, 새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 그래서 파괴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파괴 없이 유지 보수로 처리했다면 그럭저럭 또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기대한 건 유지 보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방향을 잘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시 살아가야 하므로... 기왕이면 더 잘 살아가고 싶다.



석파정서울미술관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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