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하 Dec 12. 2020

올해만, 조금, 울자

사랑할 줄,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2020년이 지고 있다. 해가 바다 아래로 자취를 감추듯 어김없이, 조용히, 심각하게 멀어져 간다. 누구나 올 한해는 힘들었다. 더 힘든 사람 덜 힘든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행업에 종사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코로나 블루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정도로 참담했을 것이고, 코로나로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과 이러한 중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건강해, 조심해'라는 말들을 안부로 전하며, 재난 속에서 서로의 안위를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올해도, 앞으로도 꼭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2020년은 어땠을까. 당신의 2020년은 어떠셨나요.



올해 코로나 속에서 건강을 챙긴 것 만으로도 잘 보냈다고, 앞으로도 조심하라고 달래주고 싶지만, 올해 나는 많은 상실감과 절망으로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1. 사랑받고 싶었던 적지 않은 나이의 여성이 그 자리에, 햇빛이 들지 않은 곳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2. 아직도 사랑할 줄 모르는 어떤 여성의 어깨가 가련하게 떨렸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내내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이러면 어떡하지, 이건 확실히 잡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이걸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지금의 일들을 부풀려 과장하고,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거대한 물살로 다가올 것 같아 전전긍긍했던 감정, 불안. 왜 어째서 불안해 했을까? 여름, 진한 상실감을 겪고 나서 나는 불안해 하지 말자고 다짐을 많이도 했다. 이제는 상대에게 믿음을 보여주고, 표현하고, 따뜻하게 보듬아 주자고 다짐했다. 여름을 지나 겨울이 되었고, 나는 지독하게 (실망스러운) 나인 채로 남아있다. 여전히 불안해 했고, 여전히 이기적이었다. '너의 사랑을 보여줘,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보여줘'라고 이기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상대방에게 강요했었다. '나의 사랑을 보여줄게, 네가 생각한 방식대로 보여줄게'는 하지 않으면서... 어처구니 없잖아!



사랑받고 싶었는데 사랑할 줄은 몰랐던, 무던히도 싫어했던 내가, 그대로 시간을 건넜을 뿐이었다.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지? 안정감 있는 사랑으로 허덕이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는데, 달라진 게 있었을까. 아는 사람들 붙들고 '나는 형편없죠, 나는 왜 이러죠' 호소하면, '그런 게 아니야'라거나 '맞지 않았을 뿐이야', '네 마음 속이 엉망으로 가득차 있으니 그걸 정리해'라는 말들로 되돌아 왔다. 다 맞는 말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를 꾸짖는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듯 보였다. 모든 일들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내가 엉망인 거라고 후회하고 미워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속을 갉아 먹는 것 같이 속이 쓰려왔다. 내가 나를 잡아 먹고 있는 걸까. 모든 일들이 나에게서 비롯된 건 아닐 것이다. 사건은 그 안에 동참한 사람들과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올해만, 조금, 울기로 한다. 아직 준비 안된 존재가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조금만 울고, 조금 더 성숙하자. 그래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 후에 남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