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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Dec 31. 2020

12월에 읽은 책들

일인칭단수/연년세세/죽은자의집청소/사랑수업


2020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한 해를 쭈욱 돌아보고 싶으나, 돌아보기엔 이래저래 멀어진 것을 추억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을 것 같아 2021년의 다짐을 하기로 한다. 가버린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중심에서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이제는 시간을 굉장히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낭비하고 묵혀두고 흘려 버리기에는 시간이 굉장히 아까워졌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일 식은 죽 먹기로 잘했지만, 좀먹는 일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도 그만 두어야 할 거라고 말이다.


2020년 12월, 연말이라는 조바심에 의미 있는 일로서 가장 손 쉬운 책 읽기를 해보았다. ‘일인칭 단수’를 시작으로 ‘연년세세, 죽은 자의 집 청소, 사랑 수업’까지 물 흐르듯 읽었다. 간단한 리뷰 정도로 마무리를 해볼까 한다.


일인칭 단수

‘일인칭 단수’는 따로 브런치를 통해 리뷰 했는데, 클래식한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의 여전함과 나이든 작가의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담겨 무난히 읽었다. 스토리의 몰입감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뭐, 나는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몽롱한 세계가 반가웠다.


연년세세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기저에 회색빛의 안개가 떠오르는 희뿌연 정서가 작품 전면에 흐르는 듯하다.



‘연년세세’는 가족 구성원(엄마, 장녀, 차녀, 막내 아들)을 통해 보편적인 그 세대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전쟁통에 살아남아 친척 손에 거두어져 고생하며 살던 엄마. 부모 없는 그녀에게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파묘가 이 책의 가장 첫 작품이다. 나이 들어 더 이상 험준한 산의 할아버지 묫자리를 찾기 어려워 이제 그 자리를 정리하는 엄마. 묫자리라든가 그 흔적이 그녀에게는 뿌리였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라 엄마가 된 그녀는 장녀의 아이들을 돌보며 한 건물에 살고 있다. 나이 만큼의 수만 가지의 기억을 안고 살 터다.

장녀는 쪼들리는 가정 형편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족 부양에 힘쓴다. 백화점 이불 판매 수완이 뛰어난 장녀는 부모님, 두 동생 앞에서 야무져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무난한 남편과 그렇게 살아간다.

장녀 입장에서는 뭘하는 지 걱정되어 내 밑에서 일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건네게 하는 차녀. 장녀 보다 삶의 무게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되 가열찬 느낌은 아닌듯 보인다.

막내 아들은 뉴질랜드에서 일하며 정착의 기회를 노린다. 한국 보다는 나을 그곳의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엄마 세대도, 장녀, 차녀, 막내 아들의 시간들도 저마다 흘러가는 것 아닐까. 작가는 그 세대 속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연년세세 자기 만의 짐이라든가 역할을 수행하며 쌓여가는 삶의 모습을 말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올해 주목 받은 책이지 않을까 한다. 제목과 표지가 꾸준하게 눈에 띄고 있었다. 다만, 주제가 죽은 이들의 흔적과 궤적이므로 기운을 처지게 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읽을 생각은 못했다. 연말이 되니,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싶어 마주하기로 했다. 죽음은 굉장히 두렵지만 삶에 포개어 질 수밖에 없는 현상이자 낱말이니까.

제목 그대로 죽은 이들의 집을 청소하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실려있다. 현장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죽은 이들의 사담보다는 그들 삶에 애도를 표하며 마지막 흔적을 최선을 다해 정리하고 있었다. 작가의 전공이 문학 쪽이라 그런 건지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서술된 느낌을 받았다.

죽음의 끄트머리 흔적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삶이란 어떨까. 그 현장이 죽음 그 자체는 아닐 것 같다. 한 인간의 숨이 끊어진 이후의 광경은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없다. 이런 고독한 죽음엔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만, 잘 살다가 자연스럽게 저물어 갈 수 있는 삶을 모두들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죽어야만 할 정도로 거북한 삶이 되지 않도록, 그런 사람들이 많이 없었으면 한다.

주어진 삶에 감사해 하며 잘 살기 위해 노력함과 더불어 내 주변도 따듯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타인도 함께 웃을 수 있도록, 내가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을 가다 웃음을 터뜨리거나 함박 미소를 짓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달리 세상 사람들 다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삐뚠 감정도 들고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도 시시하니 너희들도 시시해라!’ 이런 태도가 아니라, ‘많이 웃어주세요, 저도 많이 웃을 거예요.’ 이런 마음이 생겨났다.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더불어 행복하기를 기대하고 또 바란다.


사랑 수업


윤홍균 박사의 ‘자존감 수업’에 이은 책이다. (물론 저는 그 책은 안 읽었지만요.) 책 한 권으로 ‘정말 사랑이 뭐죠?’의 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매번 실수와 좌절을 반복한다면 원인 찾기와 대안 마련을 위해 읽고 배우는 시간은 필요하다.




애착 유형이라든가, 이별 오답노트 작성하기, 안정 애착을 만드는 방법 등이 실질적 팁이 될만한 내용들도 담겨있다.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거물급이기 때문에 모오든 것을 담았다기 보다는 끄덕일 수 있는 내용으로 쉽게 풀어놓은 책인 것 같다. 내 상태를 알고 현명한 처신을 위해 단계별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극복의 방안을 떠올려 보며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책 한권 뚝딱 읽는다고 사랑을 잘 받고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앎-돌아보기-담기-다짐하기 등의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이다.



책은 텍스트요,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건 살아있는 나이므로 뭐든 움직여 보기로 한다. 좀 더 큰 액션으로 저기 먼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에도 내가 보이도록 두 손을 번쩍 들어 ‘내가 서울 여기에 있어요!’하고 알려볼 셈이다. 책이라는 도구로 내가 커질 일만 남도록, 2021년에는 더 열심히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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