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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Dec 21. 2020

일인칭 단수/무라카미 하루키

'나'의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나'를 흔들고, '나'를 의심하게 한다


가장 개인적인, 가장 보편적인 기억과 기록의 주인공
‘나’라는 소우주를 탐색하는 여덟 갈래의 이야기





오랜만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덟 개의 짧막한 이야기들이 단숨에 휘리릭 지나갔다. 작가나 역자의 말도 없다. 하루키스러운 미궁 같은 여덟 개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하루키 특유의 쉬운 문장 구사 덕분에 굉장히 빠르게 읽힌다. 다만, 초현실 같은 상황과 서술에 대한 해석은 일차원적이나 직설적이지 않아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가 생성될 여지는 충분하다.



이 책의 중심인 ‘나'라는 존재는 굉장히 단절되고 불명확하다. 일인칭 단수. ‘나’로서 존재하며,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경험한 것과 기억하는 것... 여덟 개의 단편 속 ‘나’는 미스테리함과 불분명한 속성을 갖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스러운 경험의 확실한 설명을 찾을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희뿜해진다.



나이가 쌓여가는 하루키가 바라본, 일인칭 단수인 자신은(혹은 개별 존재들은) 선명해지기 보다는 단절되고 끊어지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모호해지는 애매한 존재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걸까.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몸에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누가 명확히 단언할 수 있으랴? - 돌베개에, 24p.



하루키를 좋아하진 않지만 알고 있다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의 소설엔 에로틱한 장면이 꽤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 책의 제일 첫 번째 소설인 <돌베개에>에도 알바에서 만난 연상의 여자와 하룻밤을 함께 하는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녀에게 받은 단카집을 통해 그녀를 기억하는 장면에서 ‘나’가 서술하는 부분이다.


올해 만큼 기억에 기억을 더듬은 적도 없었다. 장면과 말들이 또렷히 떠오르다가도 그곳과 타인과의 대화에 대한 기억은 점점 소멸의 길을 밟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일인칭 시점의 내 것도 아닌 것이다. 이인칭 시점의 상대의 것도 아니고 그 공간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나도 물론 그때는 무척 신경쓰였어." 내가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곱씹어보았지. 상처도 받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멀찌감치 물러나 바라보니 전부 아래도 상관없는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인생의 크림과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라고."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 크림, 48~49p.



이 단편의 제목은 <크림>이다. '크림'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크림과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라고'에서 보듯 본질과 비슷한 무엇을 지칭하지 않을까 한다. 소설 속 ‘나’는 학창시절 별로 친하지 않은 여자인 친구의 음악 연주회에 초대 받는다. 그러나 실제 가본 그곳은 주택가였으며, 연주회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 여자 아이가 왜 열리지도 않는 연주회 초대권을 줬는지는 성인된 지금까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나'는 여자 아이의 초대권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말한다.


'나'는 여자 아이가 알려준 연주회에 갔다가 낯선 할아버지의 요상한 물음을 받는다. 원의 중심은 있는데, 둘레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말 그것은 무엇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그 질문의 답은 진정으로 중요한 순간에 찾게 될 것이라고 '나'는 훗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지독하게 나를 옭아맸던 경험의 원인을 찾는 것은 굉장히 무의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일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에 '왜'를 찾는 것은 정말 가치 없는 일일 것이다. 진정 해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으며, 꽤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때에 그것은 답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인생의 크림을 찾는 일은 어렵지만, 무엇이 내게 크림이고 크림이 아닌 지를 구분하는 일은 끊임 없이 이뤄지는 거라고.



"그렇지요. 그것에 적힌 이름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정신을 오로지 한 점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의식 속으로 고스란히 거둬들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신적 육체적 소모도 크지만, 일심불란하게 어떻게든 해냅니다. 그렇게 그녀의 일부는 저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하여 저의 갈 곳 없는 연정은 나름대로 무사히 충족되는 셈이지요."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201p.



어느 곳에 잠시 묵은 료칸에서 원숭이가 등을 밀어준다. 그 원숭이는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며, 같은 원숭이에게 연정을 품지 못하여 인간 여자의 이름을 훔치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 참으로 하루키 다워서 순간 큭하고 웃음이 나왔다. 시나가와의 원숭이는 여자의 신분증 같은 걸 훔쳐 그 이름으로 연모를 한다. '나'는 흥미롭게 듣고 잊고 살다, 여성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여성이 '자신의 이름이 뭐죠?'라고 잠깐 자신의 이름을 깜박한 걸 통해 원숭이를 떠올린다. 그 여성 편집자는 최근 신분증을 분실하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내가 나의 이름을 까먹거나, 나답지 않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시나가와의 원숭이라든가 뱀사골의 토끼가 의도를 갖든 장난이든 어떤 행위로 나를 교란시킨 것일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것, 자기 의지를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장난질에 의해 얼마든지 교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키 다운 재밌는 상상이다.



계단을 다 올라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계절은 더이상 봄이 아니었다. 하늘의 달도 사라졌다. 그곳은 더이상 내가 알던 원래의 거리가 아니었다. 가로수도 낯설었다. 그리고 가로수 가지마다 미끈미끈하고 굵은 뱀들이 살아 있는 장식처럼 단단히 몸을 휘감은 채 꿈틀대고 있었다. 스륵스륵 비늘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도에는 새하얀 재가 복숭아뼈 높이까지 쌓여 있고, 그곳을 걷는 남녀는 누구 하나 얼굴이 없으며, 유황처럼 누런 숨을 목 안쪽부터 고스란히 내뱉고 있었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차가워서 나는 슈트 재킷의 깃을 세웠다. - 일인칭단수, 232p.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일인칭 단수>. '나'는 그러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상대가 확신에 차서 나를 비난할 때, 그때 나는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는 비난 받을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누군가 나를 몰아세우듯 말한다. 사람을 잘못 보고 오해한 걸까, 기억을 못할 뿐 내가 한 행동인 걸까.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가볍게 흘러가지만 묘하고 요상하고 모호한 스토리 라인에 약간 몽롱해진 느낌이 들어서도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은 그러한 데 있으니까. 편안하게 흘러가는 문장이지만 꽤 복잡 미묘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일인칭 단수>는 분명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작가의 나이듦이 느껴졌고(나쁜 말이 아니라 그냥 느낌에서), 클래식한 하루키 스타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익숙한 친근함이 느껴졌다.



하루키가 펼쳐놓은 여덟 개의 이야기는, 개별의 ‘나’이자 보편적인 ’나’의 속성을 듬성듬성 건드린다.

'나'는 단절되고 끓어진 존재일 수 있다. 외부 요소(웃기긴 하지만 말하는 원숭이라든가)의 개입으로 가끔 이상한 방향의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기억이라는 게 생각보다 굳건하지 않을 수 있다. 시덥지 않게 벌어지는 일에 골몰할 필요는 없지만 정말 중요하게 탐구해야 할 일도 있다. 쉽게 정의되진 않지만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작업이다.

‘나’는 얼마나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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