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 해야 할 듯, 하지만 않으려는 마음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모든 인연은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결국 내가 맞았다
인생은 종종 부질없기도 하다
목숨을 건 사랑은 목숨만 잃기가 일쑤였고
믿음을 얻기 위한 최선은 늘 밑 빠진 독이며
노력으로 이룬 결과도 영광은커녕 수치였다
무엇을 위한 사랑이었고 노력이었나
정말로 모를 일이다
그저 그 순간의 행복만을 위한 자기긍정
그저 그 찰나의 착각만을 위한 자기변명
그게 정말 염증이라도 났을까... 모르겠어
그래서 그녀가 떠났다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내내 울먹여도
버스가 도착하면 냉담히 올라탔던 그녀처럼
시간은 단 한 번도 거꾸로 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 일인 것만 같다
정지한 적 없는 인연의 생로병사가 이치였고
죽어가는 사랑 앞에서 내내 끌어안던 나도
결국에는 홀로 죽어갈 것이다
여름의 종말이 가을인 것처럼
사랑의 종말도 곧 새로운 계절일 뿐이다
서서히 망각 속 갯여울을 따라나설 뿐이고
차츰 식어간 상흔 역시 저절로 아물 일이다
그 모든 순간들을 일컫는 말이 불멸이라면
불멸의 극치야말로 죽음일 뿐인 것이다
장마를 걷어낸 태풍이 또 들이닥치면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밤도 이내 바뀔 법
새로운 가을이 곧 겨울로 저무는 동안
죽음의 음악을 듣는 연습만이 계속될 법
그걸 타협이라고 하자, 하지 않아도 될
해야만 하는 듯하면서도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속 깊이 바라보는 새벽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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