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지속
회중시계의 표정을 바라보는 일은 때때금 먼 기억의 자화상을 보는 것과 같아서
그게 사막 위에 덩그러니 놓였는지 아니면 물가에 잔잔히 떠오른 잔상이었을지를 몰라서
한참을 바라보면 이내 그 시계들은 축 처져 제 갈 길을 몰라하며 어쩔 줄을 모르는데
그렇게 한참 바라보던 내 나이테도 어느덧 영글어 이끼가 자라고 검버섯이 피어난다면
우리는 그 세월을 과연 무엇이라 부를지에 대해서도 연신 모른 체하며 또는 실제로 모르며
가끔씩 전달돼온 편지들을 읽고 그 사연을 눅눅하게 적어낸다면 몰라도 말이지
그래서 다시 회중시계의 바늘이 가리킨 이정표들을 하나둘씩 꺼내 음미하게 되고
또는 언덕 밑으로 자라난 그림자만큼 내 기억 속 절망들을 침잠시킬 수만 있다면
마치 피곤함에 누워버린 가죽덩어리 안 살갗처럼 스스로 썩어갈 수도 있으련만
어찌된 일인가를 몰라서 머뭇댄 전화기 앞에서 이따금 안부를 묻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해
저마다 각자의 사연은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그걸 모두 다 꺼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
하여 또다시 걸었던 전화기에서 부재중 알림 소리만 가득한 채
우리는 그 세월마다 입힌 옷가지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까를 늘 연구해
혹은 그 시간들을 찾아 한차례 더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 단정,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