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by 단정


만약에




만약에 내 말을 듣는다면

네가 먼저 떠나겠다는 말은 않았을 텐데

영하 십삼 도 추위에도 내 곁을 지켰을 텐데

만약에 네 말을 먼저 들었더라면

내가 널 떠나도록 놔두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추우니 몸부터 녹이라며 지켜볼 텐데

내가 바보 같아서 정말 바보 같아서*

떠난다는 말엔 그저 웃으며 보내고 말았고

다시 오겠단 말을 그리 철석같이 믿었었고

하여 스무 해가 지나도록 너를 기다리지도

나이를 하도 먹어 기억조차 안 날 얘기들을

이처럼 읊조리지도 않았을 텐데

내가 바보 같아서 정말 바보 같아서

다시 보면 어쩔까 싶어 두려워하다가도

다시 못 볼 나날들이 훨씬 더 많음에도

그저 기다린다는 게 익숙해졌을 뿐인 걸

그저 속절없는 장단에 익숙한 것뿐인 걸

내가 바보 같아서 정말 바보 같아서

좋았던 기억들 모두 부질없음을 몰라서

사랑했다는 말이 쓸모없음조차 몰라서

그게 두려웠음을 여태껏 전혀 몰라서

그래서 네가 떠났음도 이제야 알아서




* 태연, 2008




# 단정,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