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를 기억하며

by 단정


그루를 기억하며




오랜만이죠

출판사 사정 얘기를 듣다가 자꾸 생각나서 몇 자 적는 거예요 아직 자기 책 한 권을 갖지 못한 분한테 드릴만한 최고의 선물은 또 책이 아닐까 해 그 얘기를 드렸던 게 기억났어요

그루가 곧 나무요 곧 종이라는 얘기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요즘은 전자책 단말기로도 신세계를 경험하곤 해요 확실히 좋아진 세상이죠

날씨가 아직도 춥기만 하고 길거리에 아직 녹지 않고 쌓인 눈을 볼 때면 봄을 기다리던 마음도 때때금 지칠 적 많았어요 너무 늦은 기다림이란 가끔 변덕스럽기도 해 기다림을 아예 잊는 적도 많았으니까요

오랜만이죠

샤갈의 그림들을 볼 때면 그 원색의 조화로움에 넋이 나갈 때도 있거든요 수수한 수채화랑 풍경화 몇 점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문득 또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림을 그려보고픈 생각이 많았지만 돈 한 푼 못 버는 시인 주제에 언감생심이겠어요 아무튼 그래요

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라면 아마도 이 한마디일 거예요

동거도 아니고 동인도 아니라 해도 동지는 맞으니까요 같은 길을 걸을 때면 행복해지는 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잖아요

같은 시절을 경험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죠

인연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엔 너무 많은 사연들이 공존하는 법이니까요

꽃이 피고 질 때를 아는 감정이

찰나가 아닌 영원을 꿈꾸는 순간

비로소 시 한 구절을 읊던 때도 있을 테니까요

비로소 보고프다는 말을 중얼거릴 때처럼



# 단정,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