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늦잠을 잤습니다
늦은 밤 어떤 한 울먹인 사연을 달래려 내내 서성댔나 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래도 웃을 수 있었나 봅니다
오전 열 시 강선마을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집을 나섰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고 연둣빛 잎들이 반짝거리고
동네 어귀의 서점에서 박준의 새 시집을 사서
그가 쓴 단어들을 내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손금, 오방, 안개, 외연, 마중과 배웅도 없이...
누군가의 울음을 웃음으로 만들어주는 일은
스스로가 벅찬 이야기일 뿐입니다
마중을 하며 배웅을 한다는 일도
생각해 볼수록 더더욱 반가울 일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매듭을 짓지 않고
또 누군가의 실타래 속에 천천히 스며들 때
짐짓 마중과 배웅을 하는 마음을 읽습니다
수줍어 한 꽃과 구름이 남긴 흔적을 좇아
애처롭던 봄바람의 냄새도 맡았습니다
그윽한 라일락 향으로 잠을 물리치면
이윽고 그 실타래 끝에 매달렸던 희망도
오전 열 시의 봄바람만큼 맥없이 흔들리기에
그래서 늦잠을 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 단정,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