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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단테 May 28. 2023

두렵지만 즐거워

알코올 중독자의 일기 2




순발력이라고 착각했던 삶의 패턴들이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급하게 지금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순간순간을 넘기는 것을 나는 "나의 순발력이 좋다'라고 생각했었다. 당장 해결을 했기에 조금 안도를 하며 그날 잠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문제가 불어났다. 당장 해결은 했지만 그것이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방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로 쓸어 쓰레기를 담으면서 깨끗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먼지들이 여기저기 계속 더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순발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망각을 선택했다. 잊어버리리라. 혹은 이대로 잠들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살고 있지만 더 이상 순발력이나 순간을 넘기기 위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는 것들에는 사과를 하고 수습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알코올 중독 치료 과정 중에 내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1.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2. 늦고 답답하더라도 현실에 있는 그대로 부딪히기

3. 무리한 운동하지 않기


첫 번째 나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건 마치 사업하기 전 사업계획서를 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는 체계적으로 나를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서 시작한 질문은 나는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까지 이어졌다. 단순히 나의 감정이 "외로움"이라고 지칭했던 부분들이 두려움, 기대감, 좌절감, 사랑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감정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내가 왜 좌절감을 느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복기. 그렇다. 나는 하루하루를 너무 감정에 치우쳐 살면서 스스로를 복기하는 과정이 없었다.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것을 복기하고 실수를 복기하는 과정을 적어나간 적이 없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은 'to do list'를 적는 것만큼 'to be done list'를 적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쓰기가 얼마나 앞으로 더 나에게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욱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앞으로 나갈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두 번째 그대로 부딪히는 중이다. 모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부딪히기 전에는 나는 겁쟁이 었던 것 같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회피하고 도망 다녔다. 어떤 순간에는 술이었고 어떤 순간에는 거짓말이었다.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작은 일들을 부딪히며 해결했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나의 큰 문제들을 조각내어 하나씩 해결하는 중이다. 어떤 사람의 성공기나 유명 멘토들의 이야기처럼 드라마틱하게 해결되는 일은 내 삶에 아직 없었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중이다. 이 길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고 힘들지만 회피하고 있었던 순간보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떻게 부딪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방법을 알지 못한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도움의 손을 빌리기에는 부끄러운 일들도 존재한다. 그래도 미루는 게 아니라 해결해 나간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좋아진 부분들이 있다. 꼭 부딪힘으로써 찾아온 행복들에 대해서 후에 서술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무리한 운동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가면서 자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상담을 통해서 깨닫게 된 점은 나는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긴장을 유지하고 꾸준히 자책을 해왔다는 것이다. 분명 해결해야 하는 것들은 회피하면서 쉬어야 하는 순간들에는 운동을 하며 스스로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라는 합리화 수단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운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휴식시간을 갖는 편이다. 휴식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적기도 하고 책을 읽는 순간도 많아지고 있다. 쉼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쉬는 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삶에 루틴이 빡빡하다면 조금은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된다. 긴장된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꽤 많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이제야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도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 긴 여정이 남아 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글을 계속 써볼 예정이다.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이제는 잃고 싶지 않고 더 사랑하고 싶다. 그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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