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하는 시간

5. 마도로스 박 아저씨의 책 예약

by 김용희

우리 동네에는 <마도로스 박> 아저씨가 산다. 나는 아저씨가 배를 탔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느낌상 배를 탔을 것 같아 나 혼자 <마도로스 박> 아저씨라 부르고 있다.


아저씨는 한 때 주점을 운영하시다가 자식 교육에 안 좋단 이유로 최근 바닷가 마을에 펜션을 오픈했다.


생활력이 좋은 아저씨는 얼마 전까지 낮에 양계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다가 어느 날 아저씨한테 생일 선물로 계란 한 판을 받고 알게 되었다. 그날 내게 계란을 생일 선물을 주시려고 준비했던 건 아니고 계란을 많이 들고 오다 그냥 나를 마주쳐서 준 건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었던 뭐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도 난 생일을 챙겨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아저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자상하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많이 강해 보이는 남자들이 그렇듯 거친 외모 뒤에 감춰진 마음은 여리고 따뜻하다. 나는 아저씨를 만날 때면 세상엔 아직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따뜻해진다.


“어이, 김 작가. 어디가 멘?”

길을 가는 데 마도로스 박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했다.


“커피 사러 가요. 정수기 매니저님이 오신대서. “

“뭐? 정수기? 커피를 왜 사? 그런 건 안 사도 돼.”


아저씨도 제주의 조냥정신*으로 내 돈을 아껴주려 불쑥 말을 내뱉으셨다. 아니면 섬세한 아저씨 감성으로도 형식적인 관계에 커피까지 사놓는 내가 이해하기 힘드신 것도 같기도 하다.


“아, 친해서 그래요. 제가 도움도 많이 받고.”

나는 그간 정수기 매니저님과 나눈 우정 이야기를 설명했다. 아저씨는 좀 신기한 일이라는 듯 웃으시며 말했다.


“책은 잘 돼 가?”

“지난번에 한 권 찍었는데, 인쇄하기 전까지는 분명 귀엽고 예뻤는데요. 인쇄한 걸 보니까 이상하게 나와서 시원하게 갈아엎고 다시 쓰고 있어요."


아저씨는 껄껄 웃으셨다. 많은 사람이 나의 ‘시원하게 갈아엎었다’는 표현을 좀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걸 팔아야 지. 아무거나 막 팔면 안 돼.”

나는 진정성 있는 아저씨의 말투가 재밌어서 빵 터졌다.


“책 제목이 뭔데?"

“처음 엎은 책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좋은데?”

아저씨 맘에 쏙 드는 제목인 듯 아저씨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하는 건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이요.”


“그것도 좋은데?”


나는 아저씨가 좋다고 큰 소리로 호응해 주셔서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아저씨의 장점은 이런 공감 능력이다.


“일러스트 그릴 사람 없을까요? 이런 느낌이 필요한데. “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린 책 일러스트를 보여드리며 말했다.


“일러스트? 일러스트는 없는데?"

"그림 작가를 구하다가 직접 그리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직접은 힘들지. 이런 거 그리려면 오래 걸리겠네. 예산은? 출판사 끼고 하는 거 아니야? “

“제돈제산으로 하고 있어요. 가내 수공업이에요.”


“일러스트 그릴 사람은 모르겠지만 인쇄소는 있어."

"인쇄소요?"

"응, 인쇄소 30년 한 친구니까 베테랑이지. 필요하면 얘기해. "

“인쇄소에서 50권도 찍어줘요? 아마 육지에서 소량으로 해주는 인쇄소에 맡겨야 할 거예요. 수량이 적어서요."

“50권이 얼만데? “

나는 한 참 계산하다 말했다.

“한, 50만 원이요?”

아저씨는 나의 small scale에 매우 당황하신 듯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는 친구한테 부탁하면 돈 안 받고도 찍어줘. 내가 찍어주라면 찍어줄 거. “


아저씨는 차에 오르며 말했다.


“지금 펜션 청소하러 가야 해. 나 김 작가 책 1권 예약해 줘. 내가 꼭 사야지. “


잠시 후 시동을 걸려다 말고 아저씨는 소리치셨다.

“아니, 나 3권 예약할게.”


1권만 사는 건 아저씨가 볼 때 너무 스케일이 작은 느낌이 드셨나 보다. 나는 아저씨의 따스함과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했다.


그런데 아마 아저씨는 사모님이 내게 10권을 먼저 예약한 건 모르시는 눈치다. 그 집에 내 책만 13권 있으면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마도로스 박> 아저씨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꼭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냥정신: 제주의 절약정신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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