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달책빵을 아시나요?
제주에 살면서 가장 놀란 점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고, 책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아마 서울에 비해 자극적인 즐길거리가 많지 않아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제주도가 가진 좋은 자연 콘텐츠도 많아 책을 만드는 사람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관광산업과 연계되어 타지역보다 책방이 활성화될 수 있는 부분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주도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지역서점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얼마 전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지역서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는 인구 10만 명당 지역서점이 13.7 곳으로 발표되어 전국에서 인구 대비 지역서점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언니, 제주 동네책방 투어해 보면 재밌지 않을까? 여기 작고 예쁜 서점들 많은데..."
몇 년 전 동생이 내게 말했다.
"책방 투어? 재밌을까?"
당시 나는 책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책을 만들 생각은 꿈에도 못 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동생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었다. 그러다 우연히 헬스장 관장님의 소개로 '48분 기적의 독서법'이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1,000권의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한 번 1,000권 읽기를 해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재미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지금 통장에 가진 돈을 모두 책을 읽는 데 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기적이 일어나는 걸까?' 그냥 한 번 머리를 스치듯 생각이 지나갔을 뿐인데 그때부터 나는 공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꼭 책에 줄을 긋고 메모한다. 주요 내용은 노트필기를 하고 오래 보관해야 하는 것은 복사하고 따로 스크랩도 한다. 이렇게 하면 독서가 전혀 지겹지 않고,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쉬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만의 방식이지만, 책 읽기가 지겨워질 때쯤 다른 색 펜으로 줄을 다시 긋다 보면, 나와 책 콘텐츠와의 관여도가 높아져서 학습도 잘 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도서관 책은 잘 읽지 못하고, 책을 사서 읽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독서에 써보고자 생각해 봤던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많은 책들이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서 그런지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을 다 써버리기도 전에 신기하게도 여기저기서 나에게 책을 선물해 주기 시작했다. 내가 특별히 부탁한 것도 아닌데, '인간이 마음을 모으면 이런 일이 가능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빠른 속도로 많은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한 번 속도가 붙기 시작하니까 수필같이 줄을 긋지 않아도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책들은 또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인간관계도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고,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용희 님, 책을 한 번 써보지, 그래요? 제주 여기저기 다닌 이야기만 써도 재밌을 것 같은데?”
어느 날 친한 진희 님이 내게 말했다.
“제, 제가요? 에이 제가 무슨 글을 써요? 제 인생에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요. 일상도 늘 그렇고 그런데.”
생각지 못한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야. 찾아봐요. 분명 뭔가 있을 거예요. 일상만 적어도 재밌을 거라니까.”
진희 님의 권유에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진짜 써볼까?'
그렇게 거짓말처럼 공격적으로 책을 읽다가 나는 갑자기 작가의 세계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한라도서관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에서 만난 <소라빵 선생님>께 책 디자인과 제작에 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님은 실제로 지역서점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수업에서 지역서점에 입고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셨다.
"서점에 책을 입고하실 때는요... 이렇게 서점에 입고 메일을 쓰시는 거예요. 메일을 너무 길게 쓰시면 안 돼요. 서점 주인들이 꽤 바쁘거든요. 그리고 독립출판물을 유통시킬 수 있는 채널이 있는데요..."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서점에 입고하고 싶은 경우에는 입고 요청 메일을 정식으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전국의 다양한 온·오프 독립서점들을 소개해 주시고 수업을 마쳤다.
나는 수업시간에 배운 독립서점 사이트에서「광마영의 누드일기」라는 책을 보았다. 말을 탄 누드의 여자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신기한 책이네?'
또 내 눈에 띈 다른 책은 최바다 님의 「나의 바다」였다.
두 권 모두 <달책빵>에서 발행한 책이었다. <달책빵>은 디자인도 예쁘고 마케팅도 잘 하는 것 같았다. 노형동에 있는 큰 서점인 ㅂㅇㅂㅅ에서도 <달책빵>에서 만든 책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달책빵>이 아주아주 궁금해졌다. 언제 시간이 되면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우리 집에서 한 시간도 넘어.'
<달책빵>은 구좌읍에 있는데,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보니 우리 집에서 운전해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아침 나는 문득 고뇌에 휩싸였다.
'갈까 말까..?'
특별히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 데, 오늘 꼭 가고 싶었다.
'에이, 그냥 가보자. 「지구는 행동하는 별」 이라며?'
나는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도 끝났고, 같이 책을 만드는 동료를 만나면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달책빵>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책방 주인인 제니퍼 님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나무로 된 서까래에 하얀 벽이 인상적인 한옥이었다. 한옥은 총 2채로 되어 있는데, 한 채는 빵집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고, 한 채는 서점으로 운영 중이었다. 두 채는 통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책방 주인인 상냥한 미소의 제니퍼 님의 느낌이 좋았다.
나는 평소 읽고 싶었던 「취미부자」라는 독립출판물을 고르고, <달책빵>에서 만든 다른 책들도 구경했다.
'지역 서점들은 주인장님의 분위기에 따라 진열한 책들이 달라지는 걸까?'
나는 동생 말대로 다른 지역서점에도 가서 각각의 서점의 개성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달책빵>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진열된 책들도 쉽게 읽히는 예쁜 책들이 많았다. 책방에 천천히 더 있고 싶었지만, 숲에서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빨리 가봐야 했다.
카운터에 있는 제니퍼 님께 구매하려는 책을 내밀며, 나는 말했다.
"여기서 만드신 책들이 예뻐서 한 번 구경 왔어요. 혹시 책 만들기 수업은 이제 모집하지 않나요?"
"북페어가 4월에 열리는 건 아시죠? 그래서 저희는 10월 정도부터 수업을 모집해서 다 같이 책을 만들어 북페어에 나가요."
"아, 그래요? 저는 하반기에 바빠질 수도 있는데... 지금이 제일 여유롭거든요... 그럼, 책 수업 말고 다른 클래스는 없나요?"
"저기 벽에 보시면 포스터가 있는데요... 작가님들 모셔서 초청 강연도 하고 있어요. 다음 금요일에 시인님이 오시는 데 한 번 와서 들어보세요."
시간을 살펴보니, 금요일 밤이었다. 내가 운전해서 오기엔 좀 부담스러운 시간과 거리였다.
"아... 저 시간대에는 제가 집이 멀어서 여기에 오기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나는 아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제니퍼 님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가면 나중에 행사가 있을 때 문자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말하고 연락처를 적어드렸다. 연락처를 적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책을 쓰고 있는데, 얼마 전에 한라도서관에서 배우던 책 만들기 수업이 끝나서요... 혼자 하려니까 막막해서 한 번 와봤어요. 책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책을 만들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요..."
"어머? 정말요? 맞아요. 저도 책을 쓰고 있는데, 수강생님들이 책 만드실 때 저도 같이 만들었어요. 이게 이번에 제가 만든 책이에요."
「프랭크의 행복 찾기 프로젝트」라는 파란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일러스트도 좋았다.
"그 책도 같이 살게요."
나는 책이 귀엽고 재밌어 보여서 구매하기로 했다.
"근데 어떻게 제주까지 오게 되셨어요?"
나는 책을 구매하면서 제니퍼 님이 궁금해져 질문했다.
"아 그건 제 책에 나와 있어요."
나는 어차피 책을 사기로 했고, 숲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이야기는 책을 읽어본 후 나중에 다시 와서 하기로 했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애월읍에 있는 '족은 노꼬메' 오름이었는데, 목적지까지 1시간 2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빨리 가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나왔다.
서점을 나오면서 나는 제니퍼 님과 서점의 편안한 분위기가 좋아서,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달책빵>에 가보기로 했다. 제니퍼 님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주의 지역서점들을 한 번 구경해 보기로 했다.
<달책빵>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