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완결성 있는 북 디자인
오늘은 유명 책 디자이너분께 '편집 디자인의 기본과 북 디자인의 세계'라는 강연을 들었다. 강사님은 우리 집에 있는 '인터뷰 책'에도 나오셨던 분으로 밝은 에너지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분이었다. 유명 강사님이라 그런지 어떤 분은 강의장에 디자이너님이 디자인한 책을 들고 오셨다.
"원래 제 수업은 개념을 배우는 데 8시간을 할애해요. 그런데 오늘은 2시간 안에 많은 것을 얘기해야 해서 여러분이 무얼 원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책을 만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실무적 방법론 위주로 말씀드리려고 해요."
책에 대한 강의를 계속 듣다 보니 강사님마다 스타일이 모두 다른데, 나는 이분의 배려 깊은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밝은 미소와 친근함도 좋았다. 나는 오늘 앞자리에 앉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수업은 2시간에 할 수 없는 주제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얻어가는 게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책 디자이너이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조금만 말씀드리고, 여러분께서 응용하실 수 있도록 혼자서 책을 만들 때 필요한 완결성을 높이고,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위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사님은 아침에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느라 멀미가 났다고 했다. 원래 서울에서 제주에 온 첫날은 누구나 피곤한 데, 오늘 멀미까지 하셨다니 지금 얼마나 정신없으실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표지와 내지가 있어요. 내지에는 면지, 표제지, 차례, 본문, 판권 페이지가 있죠. 이 각각의 페이지에 들어가야 할 필요 요소들이 있는데요. 그게 빠졌을 때 책의 완결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어요."
며칠 전 나는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이란 승마 에세이 책을 완성하고, 가제본을 맡겼다. 작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 수도 없이 고민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완결성>
초보가 알 수도 없고, 감도 없는 그 부분.
"책의 면지는 예전에는 색지 2장을 사용했었는데, 요즘에는 1장만 넣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면지가 없는 경우는 '음... 좀... 왜 넣지 않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어요. 원래 면지의 역할은 표지와 내지 사이에서 단단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부분이죠. 내지가 없으면 표지가 휘거나 벗겨질 수 있어요."
나도 면지를 넣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 이번 가제본에 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끔 독립출판물에는 면지와 내지를 같은 종이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디자이너님은 면지가 내지보다 더 두꺼워야 더 단단하게 붙는다고 말씀을 덧붙이셨다.
"참고로 면지는 디자이너가 보통 책 표지의 색감과 맞춰서 사용합니다."
'아, 나는 완전히 다른 색감을 넣었었는 데...' 이번 디자인은 망했나 보다.
"표제지에는 제목, 저자, 출판사 이름이 들어가고요. 표제지는 보통 2번 들어갑니다. 1번 넣기도 하는데요. 1번 넣으면 역시나 '음... 좀... 왜 넣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죠."
나도 표제지를 2장 넣는 걸 고민해 봤었는데, 쓸 말이 없다고 생각해서 1장만 넣고 그 다음 장은 그림을 넣었었는데... 표제지 2장을 넣으려면, 첫 장엔 제목만 쓰고 뒷장엔 제목과 지은이를 쓰면 되는 건가? 쓸 말이 별로 없는데, 같은 내용을 넣으면 안 되나? 그럼, 글씨체를 다르게 하면 되는 건가? 표제지는 책의 시작이고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은 건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판권 부분은 보통 ISBN이 없으면 책의 존재를 알리기 어렵습니다. ISBN이 있으면 여러분이 혼자 만든 책이라도 도서관에 넣을 수 있어요. 나 혼자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면 이 부분은 꼭 발행하시는 게 좋습니다."
역시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출판사를 만들 예정이 없는데, ISBN은 따려는 것.
"다음은 표지의 구성입니다. 보통 인쇄소와 대화하실 때는 표지를 표 1, 앞날개를 표 2, 뒷날개를 표 3, 뒤표지를 표 4라고 부르고, 책 등을 세네카라고 부릅니다. 이런 용어를 알고 계시면, 인쇄소와 빠르고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실 수 있죠."
아...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나는 가제본을 신청할 때 세네카라는 용어를 못 알아들었다. 가제본을 신청하면서 표지만 4장을 따로 출력해 색상을 비교해 보기로 했었는데, 인터넷 사이트에 표지만 신청하는 란이 없어서 고민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인터넷 인쇄소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 인쇄소는 콜센터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직원분들이 직접 전화를 받으시는 것 같았다. 전화 연결된 직원분은 내게 포스터를 신청하고 오시, 접지를 옵션으로 넣으라고 알려주셨다. 오시, 접지가 뭔지 모르는 나는 그냥 인터넷 화면을 누르면서 신청을 해보려고 했는데, 의문만 쌓여갔다.
"근데 접지가 4단까지 밖에 신청이 안 되는 데요... 책 표지는 총 5면이 나오잖아요. 책 표지, 뒷 표지, 앞날개, 뒷날개, 그리고 책등이요..."
"아, 세네카 때문에 그런 건가요?"
'세네카?'
처음에 나는 세네카라는 용어가 후가공 중 하나의 옵션인 줄로 착각했다. 어쨌든 세네카를 모르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하고, 인쇄를 신청했다. 그런데 그 세네카가 책 등을 말하는 용어였다니... 미리 알았으면 직원분과의 대화가 좀 더 원활했을 것 같았다. 강사님이 말씀하시는 인쇄소 용어를 쓰는 점이 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지 피부로 느껴졌다.
"표지에는 제목과 부제가 들어갑니다. 요새 책의 제목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추상적인 제목들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그러다 보니 부제에서는 무슨 책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부제가 들어가면 디자인적으로는 표지가 좀 더 추상적이어도 괜찮아요. 그런 면에서 디자이너에게는 부제의 존재가 매우 중요합니다.
부제? 나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내 책은 제목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부제는 또 뭘로 해야 하나?
"출판사명과 로고는 표지와 책등에 들어가는데요. 요즘은 표지에 출판사 표기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책등에 들어가는 출판사 로고는 생략하면 좀 이상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출판사를 설립할 생각이 없어서 ISBN은 대행으로 따려고 했었는데, 그러면 대행사의 로고가 들어가야 맞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의 책 스승님이신 소라빵 선생님께 여쭤보았을 때 대행사 로고를 넣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그럼, 디자인적으로 완결성 있게 보이려면 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자, 그러면 여기까지 수업에서 궁금하신 걸 질문하시면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강사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강의 중간에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나는 여러 가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순서대로 질문하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다 아실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집에 돌아가 혼자 책을 만들 때 밀려오는 막막함이 더 힘들기 때문에 전문가가 오셨을 때 부끄러워도 지금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강사님께서 나를 지목하셨다.
"저... 표제지가 2장 들어가는 게 완결성이 좋다고 하셨었는데, 제가 감이 없어서요. 첫 장에 제목을 넣으면 두 번째 장은 넣을 내용이 없는데요...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강사님은 초보적인 질문에 좀 당황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배려심이 많으셔서 그런지 감정에 대한 수용을 먼저 해주시고 답변해 주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으시죠. 헷갈리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책을 가져올 걸 그랬네요. 보여드리면서 말씀드리면 더 좋았을 텐데요. 지금 가지고 있으신 책이 있으면 꺼내보시면 이해가 쉬울 수도 있는데, 보통 대도비와 소도비라고 해서 2장이 들어가고요..."
강사님께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는 데, 나는 대도비, 소도비란 용어에서부터 머릿속에 하얘져서 강사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가만히 말씀을 듣다 보니 여기 오신 다른 분들은 다 아는 내용을 내가 질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나의 얕은 지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뺐느니 쉬는 시간에 강사님께 따로 질문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용기를 내어 강사님께 다가갔다.
지난번 다른 강의에서도 서울에서 유명한 강사님이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인쇄를 맡기기 위해서 특정 종이 이름을 알고 싶었었는데, '이런 질문해도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종이 이름에 대해 미처 못 여쭙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냥 강사님께 여쭤보고 올 걸.' 하며 수도 없이 후회했다.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한다고 해도 책 만드는 지식에 대해 나오는 게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는 점이 나를 더욱 막막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앞으로는 조금 창피한 걸 무릅쓰고라도 모르는 건 강의에 오신 전문가님들께 바로바로 질문하기로 결심했다.
"저... 강사님, 멀미 때문에 아주 힘드실 텐데요. 혹시 질문을 좀 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는 어렵게 말을 건넸다.
"어? 그럼요."
강사님은 친절히 웃으며 대답해 주셨다. 고민이 많던 나는 강사님의 따스함이 좋았다.
"저, 아까 제가 수업 시간에 질문했던 표제지에서 대답해 주신 걸 제가 잘 이해를 못 해서요. 표제지 2장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 그게."
나는 강사님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도 강사님과 나의 지식 차이가 너무 커서 좀 난감해하시는 것 같았다.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 강사님께 들고 갔다.
"이 책은 관련 없는 책인데, 그냥 표지지 여쭤보려고 가져왔는데요... 표제지 첫 번째 장은 이렇게 글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두 번째 장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와서요.
강사님은 책을 펼치며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이 첫 번째 장이 소도비이고요. 소도비에는 이렇게 책 제목만 들어가고요. 두 번째 장이 대도비인데, 이 대도비에는 표지에서 주었던 인상을 다시 주는 거예요. 이 책에는 왜 안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대도비에는 보통 책 제목을 한 번 더 써주고, 책 표지의 그림을 다시 넣으면 됩니다."
'아...' 이제야 나는 표제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됐다. 아까 이 말씀을 해주셨던 거구나. 적어도 표제지에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작업하면 되는지, 확실히 감을 잡았다.
“저, 그리고...”
나는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 다시 입을 뗐다.
“제가 이번에 책을 출판하려고 하는데요. 출판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제가 출판사를 차릴 계획은 없어서요... ISBN을 대행해서 하려고 하거든요. 그럴 때는 책 표지와 책 등의 로고를 어떻게 넣어야 할지 잘 몰라서요...”
"아... “
강사님은 출판사 하고 주로 일을 하시니까 이 부분은 좀 당황스러우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시려는 거구나...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잠시만요.”
독립출판에 대해서는 당연히 생소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은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하셨다. 나는 먼 길에서 이곳까지 오신 분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고, 디자이너님께 이런 부분까지 여쭙는 건 실례인 것 같아 서둘러 말했다.
"아, 괜찮아요. 강사님 그건 제가 따로 알아볼게요."
강사님은 전화기를 놓고,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을 이어갔다.
"음...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제 생각은 표지의 출판사 표기는 생략하고, 책등에 간단히 로고 그림이라도 하나 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더 완결성 있게 보일 것 같아요."
너무 맞는 말씀이다. 내 비록 독립출판 작가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완결성 있게 만들고 싶다. 책등에 넣을 로고에 대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평소 고민하던 많은 것들이 시원해졌다.
나는 이제 책 쓰는 데 있어서 굵직굵직한 것은 준비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잘 자잘한 것들에 고민이 많았는데, 혹자는 그게 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덮으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적당히 덮는 것인지 모르겠는 도무지 감도 없는 나는 한 마디로 계속 뭔가가 의문이 있어 거슬리는 단계에 있다.
결국 오늘 강의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강의에서 말한 책의 완결성과 관련이 있던 내용인 것 같다.
출판사에서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가 다 따로 일한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나도 유명작가가 된다면 이렇게 유명한 디자이너님과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분은 개인적으로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좋은 분인 것 같다. 이분의 따스함 덕분에 능력이 더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강사님께 인★ 주소를 여쭤보고 싶었지만, 그냥 나중에 우연히 만나 오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이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강의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