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시간

1. 강렬한 질투는 생존 위협 때문이라고요?

by 김용희

"어때? 요즘 잘 지내?"

길에서 만난 지나가던 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네 언니. 그럼요. 그냥 평범하게 지내죠."


"친구들도 다 잘 지내지? 마당발이랑..."


"마당발은 워낙 착해서 무난하게 잘 지내죠."

내 친구 마당발이 착하다는 말하자마자 갑자기 언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요즘 안 착한 사람들이 어딨어? 다 착하지."


나는 격양된 언니의 말투에 잠시 깜짝 놀라 이 상황을 어떻게 지나가면 좋을지 언니가 왜 언성을 높이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니 주변에 언니랑 친한 사람들을 무한 칭찬한 뒤 자연스럽게 언니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아니, 이 대화의 흐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저 언니는 갑자기 왜 저렇게 화를 내셨지? 혹시 언니는... 질투가 많나?'


그때부터 나는 인간의 감정 중 질투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감정은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질투는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질투와 관련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나는 너튜브에서 지나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질투는 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나도 갖고 싶다는 부러움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확 올라오는 이유는 위협 때문이라고 한다. 즉 질투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질 때, 문제가 되는 데, 내가 가진 것을 뺏길 것 같거나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정도의 위협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질투를 느끼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그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에 대한 핵심 믿음이 '나는 별로 사랑받을 사람이 아니야. 나는 애써야지만 겨우 사랑받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야.'처럼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과 자존감이 단단히 서 있지 않기 때문인데, 결국 이 문제가 되는 핵심 믿음을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야. 나를 더 알게 되면 나를 더 좋아하게 될걸?'처럼 나에 대한 믿음을 더 건강하게 바꾸면 나아진다고 한다.


결국 질투를 줄이는 방법은 자꾸만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거둬들여서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두는 것인 것 같다.


지나영 교수님은 자신에게 투자해서 자기 계발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고,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상황을 수용(acceptance)하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개념을 갖추면 비교하는 마음이 확 줄어들 수 있다고 하셨다.


자존감이 낮은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라고 배운 것 같은데... 그러면 이미 성인이 된 우리는 '한 번 낮아진 자존감을 높일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러한 의문이 들자, 나는 뇌와 관련한 책도 읽게 되었다.


인간의 뇌는 신경회로가 연결되지 않은 덩어리 상태로 태어나 세상을 경험하면서 신경망이 연결된다. 이를 '신경 가소성'이라고 한다고 하는 데, 백과사전에 의하면 신경가소성은 우리의 경험이 신경계의 기능적 구조적 변형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백지상태로 태어나 25살까지 진화하는 형태로 오랫동안 변화하는 데, 이렇게 인간의 뇌를 불완전하게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살아가면서 발달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이것이 인간의 진화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보다는 설계도가 없는 덩어리 뇌를 만들어서 주변 환경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 효율을 최적화하게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어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뇌가 가진 긍정적인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체계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을 다시 변화시킬 수는 없는 걸까?


데이비드 이글먼의『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라는 책에 의하면, 뇌는 고정된 프로그램으로 세상에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뇌 발달이 세상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뇌는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책에 의하면 뇌는 신체가 절단되는 등의 어떤 사고로 인하여, 신체의 일부가 더 이상 뇌에 신호를 보내지 못하면 역동적으로 스스로를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며, 뇌는 경험을 흡수해서 펼치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삶의 짜릿함은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뇌로 변화될 수 있는 것에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데이비드 이글먼 교수는 뇌를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속 역동적이며, 적응력 있게 변화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Liveware'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하드웨어도 아니고, 소프드 웨어도 아닌 라이브 웨어. 나는 이만큼 우리의 뇌를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이 있을까? 싶었다.


어쨌든 책을 읽으며 나는 비록 생존을 위협받는 마음이 들어 질투라는 감정이 생겼을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뇌가 가진 힘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핵심 믿음을 바꿔 나가면서 뇌를 재정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라면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수용을 받아온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긍정적인 수용을 받지 못해 괴로움이 많은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를 수용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삶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제 질투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으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용'과 개인적 특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양성'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고자료: 분자·세포생물학백과 신경 가소성 (naver.com)

데이비드 이글먼『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알에이치코리아.

Youtube '닥터지하고' https://www.youtube.com/live/r5LaL7hih7E?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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