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는 데...'
출판사 없이 독립출판을 하는 나는 서점에 입점하기 위해서 책 소개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소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 프로필 사진이 필수인 것 같다. 확신은 없지만, 알라딘 서점 같은 곳에 책 소개 페이지 보면 그렇다. 그러니까 인쇄된 책이 도착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인터넷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책 소개 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마지막 가제본했던 책이 내 첫 책의 파이널 버전이었으나 책을 제본한 본드가 내지 쪽으로 흘러내려 표지 겉면이 좀 울퉁불퉁하게 인쇄되어 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왠지 어디서 무료로 준 책의 낌이 났다. 그런 이유로 가제본으로는 책 프로필 사진을 찍지 못하고 본 출력을 기다려 왔다.
걱정스러웠던 나는 인쇄소에 문의 글을 올렸고, 본 출력에서는 신경 써서 인쇄해 주시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쨌든 다행히 오늘 도착한 책은 문제없이 깔끔하게 출력되었고, 인쇄물의 퀄리티도 만족스러웠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일단 책 프로필 사진을 찍으려면 어디로 가지?'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펑펑 쏟아진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도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린다고 한다. 며칠간 날씨가 안 좋으면 책은 언제 유통시킬 수 있을까? 프로필 사진을 못 찍으면 유통이 안 될 것 같은데... 100권이 들어 있는 택배 상자를 두 개 보고 있자니 긴장된다.
일단 내가 책을 만지면 망가질 것도 같고 유통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갖고 있으면 책이 계속 낡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 생각나는 걸 그냥 뭐든지 해보자.'
일단 나는 현관에 놓여 있던 상자를 들어 거실로 고이 모셔 놓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로필 사진이 먼저인데...?'
비가 내리는 관계로 오늘 어딘가에서 책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장소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과 상의해 보려고 문자를 보내봤지만, 하필 오늘따라 동생도 무지 바쁘다고 했다.
'이제 뭘 어떻게 할까?'
한참 고민 끝에 내가 최애 카페 나의 아지트 '아라아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라아라'는 케이크가 맛있는 수제 디저트 카페인데, 네이버에서 검색이 잘 안된다. 이곳을 검색하려면 또박또박하게 '제주아라아라'라고 쳐야 한다.
이곳은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알려진 마니아들의 디저트 카페라고나 할까? 나는 처음 이곳을 알게 된 후로 책을 몇 시간씩 읽고 싶은 날엔 이곳에 온다. 나만 알고 싶은 장소이긴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있으면 이곳에서 함께 와서 커피를 마신다. 그만큼 아끼고 싶은 장소라고나 할까? 아마 분위기 좋은 '아라아라'라면 오늘같이 비 오는 날도 예쁜 프로필 사진이 나올 것 같다.
나는 무작정 카페 '아라아라'로 향했다. 빗길을 뚫고 차를 몰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카페에서 책 사진을 찍는다는 게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다. 카페 '아라아라'는 원래 손님이 많아 그렇기도 하고, 사진 찍는 그 책이 내 책이라 누가 볼까 봐 더 부끄러운 것도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갈까?'
가다가 도저히 못 갈 것 같아서 중간에 차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카페 '아라아라'보다 더 좋은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냐. 그냥 아라아라로 가자.'
자주 가는 카페인데도 책 사진을 찍으러 카페에 간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영업방해를 하는 것 같아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고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다. 혹시 데코레이션 용도로 사용할지도 모르는 차에 있던 귤 머리핀을 챙겼다.
'책에 귤 머리핀을 얹어서 찍으면 너무 이상하려나?'
책이 귀여워 보일 것은 같지만, 서점 사장님들께 보내는 정중한 입고 메일에 귤 머리핀은 좀 안될 것도 같다.
'너무 아는 게 없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출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용기를 끌어모았다.
'그냥 또 부딪혀 보면 아마도 문이 열리겠지.'
어렵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카페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문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문을 밀면서 휘청거렸다. 원래 건강한 내가 오늘은 야리야리한 작가 느낌을 제대로 내는 것 같다. 이런 내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들어서는 데 카페 정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 같다. 느낌 탓이지만 그냥 그렇다.
어서 오세요.
나를 알아보신 카페 사장님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나는 평소 내가 앉는 자리에 가방을 두고, 카운터로 다가가서 가장 좋아하는 제주말차밀크셰이크를 시켰다. 이곳은 케이크와 생크림 도지마롤이 정말 맛있는데, 오늘은 디저트는 차분히 디저트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좀 없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농사 이야기로 바쁘셨다. 아마 세 분은 규모 있게 농사를 지으시는 부농인 것 같다. 대화 속으로 들려오는 농사의 규모가 다르다. 부디 세 분께서는 즐겁게 대화하시고 제발 나를 안 봐주시길... 나는 사장님께서 음료를 만드시는 동안 용기를 내서 갈색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책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인테리어가 참 예쁜 카페라 이곳도 책장 느낌으로 예쁘게 나올 것 같았는데... 이 벽은 빛이 반사되어 책 제목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쩌지?'
당황한 나는 일단 자리로 돌아가 잠시 '멍' 때리기를 시전 했다. 일단 내가 앉은자리에서 책 사진을 찍었다. 비가 와서 물방울이 많이 보였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책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 건지 감이 없다. 아무리 찍어도 책이 직육면체로 나오지 않고, 어딘가 휘어져 보여서 인쇄가 잘 못 됐나 했다. 책을 테이블에 두고 꾹꾹 눌러보았다. 책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난감했던 나는 다른 테이블에서도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번에는 배경으로 주차장이 나오는 것 같다. 아무리 해도 책 프로필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 모르겠다. 한참 이리저리 옮기며 사진을 찍는 나의 등 뒤로 다른 테이블 손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내 책의 표지가 너무 튀는 것 같다. 이 책의 작가가 카페에서 그렇게 사진을 찍어 댔다는 말이 나오면 어쩌지... 진심 울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목이 탄다. 나는 제주말차밀크셰이크를 원샷했다. 시원함으로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음... 이 맛이야.'
나는 말차밀크셰이크의 힘으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좀 써볼까 했지만, 사진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안 됐다.
'사진은 찍을 만큼 찍었으니, 오늘은 이만 가야겠다.'
아무리 이 카페가 예뻐도 비 오는 날은 사진이 안 될 것 같다. 아니면 그냥 경험이 없는 내 문제인 것도 같고...
집으로 가는 길에 OPP백을 샀던 문구점에 다시 들려 독서대를 사서, 맑은 날 돌담 위에서 책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최소한 노력은 해봤잖아. 이제 그만 가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장님께 컵을 반납했다. 옆으로 돌아서는 데 쇼케이스에 신상 무스케이크가 보였다.
와. 예쁘다.
분홍색 동그란 모양의 딸기 무스케이크가 귀엽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불쑥 감탄사가 나왔다.
신상인가 봐 봐요?
컵을 정리하시던 사장님을 보며 물었다.
네. 맞아요. 요즘 서울에서 무스케이크가 인기라서 저희도 한 번 만들어 봤어요.
오~ 정말 예쁜데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네, 그럼요.
나는 잠시 책에 대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은 내려놓고, 예쁜 케이크를 감상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핑크 케이크가 예뻤는데, 그 옆에 가방 모양의 빨간 케이크도 예뻤다. 저쪽 옆에 초콜릿케이크도 맛있을 것 같다.
예쁘죠? 그래도 가격은 좀 비싸죠?
사장님은 비싼 가격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듯 내게 조용히 물었다.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도 모르게 가격표에 눈이 갔다. 무스케이크는 8천 원대였는 데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도지마롤이 5천 원인 것에 비해서 조금 비싸긴 한 것 같다.
내 표정을 보고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무스케이크가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고급이라서 그래요. 그 안에 퓌레 같은 것도 들어가고 모든 재료가 다 수입이에요. 고급 케이크죠. 그만큼 맛있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가격을 정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프로필 사진 때문에 마음이 급한 나는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카페를 나가려고 했고, 나를 보시던 사장님께서는 내게 인사하고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돌아서는 데 문득 카운터 밑 창가가 눈에 띄었다. 바닥이라 부끄럽지만, 여기에 책을 놓고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오늘 용기를 내기로 했는데, 한 번 더 내는 게 뭐 어렵겠나? 자리로 돌아가 책을 꺼내 들었다.
나는 아직 책 비주얼을 가지고 책등이 나오게 입체적인 그래픽 만드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실사 사진을 입체적으로 찍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리저리 해봐도 창가 책을 세워놓고 찍는 게 가장 베스트인 것 같은데 창틀이 없으면 책을 잘 세우는 법은 모르겠다.
'책이 잘 안서네... 어떻게 세우지?'
카운터 밑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이리 놓고 저리 놓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다시 나오셔서 카운터에 허리를 구부리시고 내게 말을 걸었다.
뭐 하세요?
'아...'
나는 얼른 일어서서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그... 제가 책을 좀 만들었는데, 사진을 좀 찍으려 하는 데... 잘 안돼서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쭈뼛쭈뼛하는 내게 사장님께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작가님이셨구나. 사진을 찍으신다면 저희 카페에서 사진이 제일 잘 나오는 장소는 저쪽이에요.
활짝 웃으시며 사장님은 내가 앉았던 테이블로 나를 안내해 주셨다.
'조금 전까지 난 여기 앉아 있었는데... 역시 사진 기술이 문제인 건가?'
사장님께서는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 도착해서 말씀하셨다.
여기가 제일 사진이 잘 나와요. 저도 여기서 가끔 찍거든요. 아... 오늘은 하늘에 비구름이 많아서 하늘이 안 예쁘네요. 여기다 책을 이렇게 두고 찍으면 잘 나와요.
사장님께서는 마술처럼 내 책을 테이블에 세우셨다.
'아... 뭐야? 대각선으로 놓으면 책이 혼자 서는 거였어?'
나는 책을 그냥 테이블에 세우면 책이 세워지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까부터 억지로 어딘가에 기대서 세우려 했었는데... 사장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아마 나는 책이 혼자 설 수 있는지 계속 몰랐을 것이다.
저기도 잘 나오는데... 저쪽에서도 찍으세요.
사장님은 카운터 뒤쪽 창가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창가에 선반도 놓여 있어서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머 어머. 저기 딱이네요. 들어가서 찍어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찍으세요.
나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카페 여기저기 예쁜 장소를찾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책 대박 나시길 바라요.
오늘처럼 첫 책의 긴장감에 어쩔 줄 모르는 날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응원도 해주시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카페 문을 나서는 데 온화한 사장님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냥 모든 게 다 감사했다.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인다15길 50 1층
영업시간: 매일 11시~22시 (목요일 휴무)
케익이 맛있고, 매장 청결하고, 인테리어 예쁜 카페
진심 나만 알고 싶은 '아라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