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으로 인쇄한 첫 책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간 인쇄 사고가 나진 않을까? 비에 젖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비가 펑펑 쏟아지는 날인데도 인쇄소와 택배기사님의 도움으로 아무 문제 없이 고이 도착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원래 초판 50권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안 되면 여기저기 발품이라도 팔 요량으로 통 크게 100권을 인쇄했다. 인쇄소 휴가와 휴일 연휴, 태풍 등으로 생각보다 진행이 늦어져 떨린 마음을 가누며 책을 기다린 시간이 길었다. 오늘 현관 앞에 생각보다 큰 택배 상자가 두 상자 쌓여 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부피가 커서 살짝 놀랐다.
'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간 나는 책을 한 권 내보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일러스트, 편집, 제작을 좌충우돌하며 마쳤고, 이제는 유통이 남았다. 큰 택배 상자는 내게 약간 막막함을 주었다.
잠시 앉아 '멍'하니 생각을 정리했다. 아마 이 책이 출간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주려면 아직도 내가 분주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것 같다.
'지구는 행동하는 별 이라잖아. 그냥 움직여 보자.'
나는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문구점으로 갔다. 내가 알기론 책을 랩핑 하는 게 좋은 데, 독립출판 작가는 문구점에서 OPP 백을 사서 스스로 포장을 하는 게 좋다고 들었다. 방금 도착한 책 한 권을 들고 단골 문구점에 들렸다.
이 문구점이 제주에서 가장 다양한 OPP 백을 판매하고 있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해 놓았다. 나는 OPP 백을 구매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떤 사이즈가 좋을지 몰라 책을 들고 대충 눈대중으로 맞춰보았다. 이리저리 책을 움직여 본 결과 가로는 조금 길지만 세로는 딱 맞는 사이즈를 하나 찾았다. 가로를 딱 맞게 포장하려면 스카치테이프도 사야 했는데, 나중에 포장하다가 스카치테이프가 부족할지 몰라 본품 한 개와 리필 하나를 샀다. 그런데 계산하고 나오다 보니 내가 뭔가를 잘 못 본 건지 모르지만 투명 테이프의 본품 가격이 4,600원이 넘었다.
'무슨 투명 테이프가 이리 비싸지? 원래 천 원대 아닌가?'
나는 가격에 깜짝 놀랐지만, 다른 테이프보다 더 투명한 테이프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아마 이 투명을 강조한 테이프는 일반 테이프보다 더 깔끔하게 포장되겠지... 가게 주인분께 미안해서 일단 샀으니까 그냥 가져가기로 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포장하려고 보니, 내가 산 테이프는 그냥 투명 테이프가 아니고, 투명 양면테이프였다. 문구점에서는 대체 왜 크게 써진 양면테이프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어쩔 줄 모르게 긴장해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다닌 게 아닐까 싶다.
책이 나오긴 나왔는데, '이제 이걸 어떻게 알리지?' 고민이 된다.
첫 책이니만큼 구매해 준다는 친한 분들도 더러 있었는데 오늘 말을 꺼내는 게 좋은 지도 난감하다. 한마디로 이 상황이 그냥 다 뻘쭘하다.
용기를 내어 가장 친한 분께 연락을 드렸다.
'사인해서 보내주세요.'
'헐.'
진심 머리가 멍해진다.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데 오늘따라 손이 떨려 글씨도 못난이 글씨가 되어 버렸다. 혹시 책에 몇 마디 적어달라는 분이 있으시면 어떻게 적을지를 떠올리며 미리 생각해 놓았던 멋진 문구도 있었는데, 적어놓은 공책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책 장 처음에 받으시는 분 성함도 손이 덜덜 떨려 간신히 적었다.
'오늘 나 왜 이러는 거지?'
뭔가 계속 삐거덕삐거덕하고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첫 책의 떨림은 이렇게 강렬한 걸까?
내가 책의 첫 장에 적은 문구가 보인다.
"항상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자 사인본인데 이 이건 아니지 않나?"
오늘 긴장이 멈추지 않는 데, 그래도 펜을 잡고 이렇게라도 글을 쓴 게 용하다. 오늘은 이 이상의 글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받을 분께 감사하며 책을 덮고 OPP 백에 고이 포장했다. 책 첫 장에 저렇게 써놓고 보니 나의 마음을 추가로 더 설명하고 싶어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제가 더 멋진 말을 쓰고 싶었지만, 첫 책이라 그런지 얼떨떨해서 계속 고민만 하다가 '항상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적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의 마음은 '항상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OPP 백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책의 첫 장의 '항상 감사합니다.' 보다 포스트잇의 구구절절함이 더 아닌 것 같은 기분은...? 그냥 느낌 탓이겠지?
어쨌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좀 더 용기를 내보자.
'오늘의 김용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아마 내일이 되면 내일의 김용희가 이 상황을 해결해 주겠지, 뭐.'하고 스스로를 챙기면서 간신히 첫 책 포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