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미술강연 들으러 가는 길

by 김용희

"용희 님, 저번에 제가 얘기했었던 도슨트님 제주에 오신대요. 저는 일이 생겨서 못 가지만 용희 님 혹시 관심 있으시면 가보시라고 링크 보내요."


오랜만에 반가운 <미쓰 탠저린> 언니의 문자였다. 언니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내게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언니와의 대화에 매료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언니는 내게 알폰스 무하라는 작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림을 찾아보았고, 그러다 나 역시도 알폰스 무하가 좋아졌다. 나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언니가 신기하기도 했고 언니의 순수한 열정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나도 이참에 언니 따라 미술에 한 번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히 좋은 시간었다.


나는 평소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강한 타입으로 사람들이 왜 예술을 즐기는지를 잘 몰랐었다. 그냥 제한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선택과 집중해서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이 바뀌었는 데 난 잘몰랐지만 인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런저런 다양한 예술적 활동이었다.


즉 취미활동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게 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데, 인간을 삶이라는 틀 속에서 잠시나마 꺼내줄 수 있는 게 바로 건전한 취미였던 것이다.


"오. 언니 감사해요. 저 신청했어요."


나는 도슨트라는 건 어떤 직업인지 이 강연에서 듣게 될 내용은 무엇인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참에 나도 예술적 취미를 갖고, 미술도 한번 알아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강연을 신청했다.




'강연장 서귀포임? 집에서 한 시간 걸리네.'


당일 날 아침 나는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미술을 알지도 못하는 데 덜컥 강연을 신청해서 휴일에 홀로 1시간을 운전해야하다니...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그리고 그 욕구를 실현시키려 할 때는 혼자 힘으로 스스로의 저항과 싸워야 한다.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p.383)


스캇 펙 박사에 의하면, 정신적 성장은 곧 개인의 진화이며 이는 무기력이라는 저항을 이기고 성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인간의 게으름은 습성을 유지하려는 엔트로피의 힘이며, 개인의 성장은 이 엔트로피의 자연법칙을 무산시킬 수 있을 때 일어난다고 했다.


'그냥 움직이자. 예술을 배우게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나는 오늘도 게으름을 피우고자 하는 엔트로피의 자연법칙을 무산시키기 위해 얼른 차의 시동을 켜고, 즐거운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들으며 516 도로에 접어들자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도로에는 이제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단풍이 들겠네. 예쁘겠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하는 것 같다.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기 싫었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움직여지기 시작하는 게... 앞으로 나는 귀차니즘이 올 때마다 본능에 이끌리는 삶을 살기 보단 정신 바짝 차리고 의식적으로 더 움직여야겠다




휴일이지만 강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신기하게도 미술 강연인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이 많았다. 나는 저 아이들이 과연 강의가 끝날 때까지 잘 듣고 있을 지가 궁금했고, '아이들을 데려온 걸 보니 미술 강의이지만 그렇게 어렵진 않은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시작 전에는 목관 5중주 공연도 있었다. 나는 이 공연도 참 좋았다. 공연장에서 연주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인지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은 너트뷰로 듣는 음악보다 음색이 훨씬 부드럽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공연도 좀 많이 봐야겠다.'


나는 평소 해야 하는 일이라 느껴지는 일들을 많이 하는 편으로 내 자신을 볼 때 순수하게 즐기는 걸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공연장에 앉아 있으니, 강제적(?)으로 음악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공연을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기계처럼 소모되는 활동이 아니라, 영혼이 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공연들도 좀 보고 싶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이참에 아트센터에서 하는 재즈 공연도 예약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는 문화적 기회가 적다고 말을 하는 데, 사실 제주는 개인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양질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다. 내가 엔트로피 법칙 때문에 그걸 보러 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 새 어떤 도슨트 님이 무대로 나오셨다. 나는 오늘 도슨트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진심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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