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다니는 미용실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제주에 온 지 7년 차, 미용실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자 뷰티에 일가견이 있는 모자리나 언니에게 연락했다.
제주에 와서 내게 맞는 미용실을 찾지 못했던 나는 매년 여름 한 번씩 육지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오곤 했었다. 집 앞에 있는 미용실 몇 군데를 다녀봤었지만, 머리가 좌우 대칭이 안 맞게 잘려서 집에 와서 내가 다시 자르거나, 커트를 세심하지 않게 한 뒤 파마로 스타일을 잡아서 머릿결 하나하나의 느낌을 못 살린다거나, 파마 후에 모질이 변경되고 축축 늘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뭔가 조금씩 애매하게 맘에 쏙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육지로 미용실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격하게 제주 미용실에 정착하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못자리나 언니는 탱글탱글한 모나리자 같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언니는 머리 뿌리부터 끝까지 반짝반짝한 머릿결을 유지한 채 풍성한 숱을 뽐내고 있었다.
"언니, 머리 어디서 했어요? 탱글탱글한 게 예쁘네요."
"응. 있어. 저쪽 베라체 아파트 뒤쪽에 있는 미용실. 난 꽤 오래 단골이지."
"거기 머리 잘해요?"
"응. 원장님이 잘하시는 것 같아. 이번에 나는 시세이도 약으로 했는데 머리가 괜찮게 나왔어. 사실 원래 거기는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미용실이야."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미용실이요? 남자들이 미용실을 왜 더 좋아해요?"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남자들은 커트에 따라서 스타일이 다르게 보이고. 볼륨이 살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붙어버리고 그래서 여자보다 미용실에 더 예민한 것 아닐까?"
맞는 말 같았다. 사실 나도 살면서 커트머리, 단발머리, 긴 머리를 다 해보았는데 관리하기는 긴 머리가 가장 편하고 단발머리, 커트머리 순으로 손이 많이 간다. 머리가 짧을수록 아무래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방향과 각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긴 머리는 머리 위쪽 볼륨이 안 살아도 별로 티가 안 나는 데 커트머리는 볼륨이 생명이다. 남자분들이 좋아하는 미용실이라는 언니의 말에 왠지 미용실 원장님이 커트의 고수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커트를 잘하는 미용실 원장님을 찾아가면 장인 정신으로 머리를 한 올 한 올 예쁘게 만들어 준다.
"언니, 거기 비싸요?"
나는 이번에는 모자리나 언니가 추천해 주는 미용실에 가볼 요량으로 물었다. 보통 긴 머리는 기장 추가라는 특별 요금이 더 붙는 데, 내 머리는 당연히 기장 추가 요금이 붙을 만큼 아주 많이 길다.
"전체로 내서 잘 모르겠는데, 다른 데 보단 좀 비싼 편일걸? 그래도 긴 머리는 한 번 하고 오래 있다 해도 되니까... 한번 가보려면 가봐."
나는 어차피 비행기 요금까지 생각하면 좀 비싸더라도 제주에서 괜찮은 미용실을 찾는 게 더 편할거로 생각했다. 육지의 2배 가격을 내더라도 머리만 괜찮게 나온다면 전체 비용은 비슷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서 맘에 들면 과감히 염색도 해봐야지. 이젠 밝은 이미지로 살고 싶다.'
사실 내 머리는 사람들이 염색했냐고 물어볼 만큼 까맣고 까맣다. 눈동자까지 까매서 까만 옷을 입으면 진짜 온통 까매 보인다. 육지에 있을 때는 자연스러운 갈색으로 염색하고 다녔건만 제주에서는 길어 나오는 머리를 계속 뿌리염색 해줘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냥 까만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꼭 까만 사람 이미지를 청산할 요량으로 모자리나 언니에게 미용실 원장님 연락처를 받았다.
나는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파마와 염색을 하기로 하고 예약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미용실에 들어가는 데 원장님과 직원분 두 분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인사를 하고 소지품을 맡겼다. 직원분들은 내게 가운을 건넸고 자리에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모자리나 언니 소개로 왔습니다."
"고객님 잘 오셨어요. 오늘 모자리나 언니 여기 들리신다고 하셨었는데, 아마 이따 오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뷰티에 관심이 많은 모자리나 언니는 이곳에 자주 들르나 보다. 나는 우연히 여기서 언니를 만나도 참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객님, 염색과 파마를 하신다고 하셨었는데요. 오늘 하루에 다 못하고 염색하신 후 열흘 후에 파마하시는 게 스타일이 가장 잘 살아요. 머릿결을 생각해서 두 번에 걸쳐서 하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나는 원장님이 만약 장인이 맞다면 원장님의 스타일대로 나를 맡겨보고 싶어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색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에 나는 인생 최대로 밝은 머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단 내게 너무 안 어울렸었다. 그래서 그냥 보통 사람들의 자연 갈색 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내 대답이 모호했는지 원장님은 컬러차트를 들고 오셨다.
"지금 머리에서 조금 변화를 주고 싶으시다면 여기 컬러차트에서 7이나 8 정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도배지를 고를 때도 둘둘 말려 있는 도배지를 보고 벽에 어떻게 구현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듯이 컬러차트를 보고 내 머리에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하는 게 어려웠다.
"그냥 밝게 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8 정도 해보셔도 좋아요. 고객님, 오늘 커트도 하실 거예요?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다음에 파마하실 때 어떤 스타일로 하실지 말씀해 주시면 오늘 감안해서 잘라드릴게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떤 스타일... 아무 생각 없이 간 내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육지 미용실에서 했던 머리 사진을 보여드렸다.
"그냥 이렇게 허시파피 느낌의 파마머리로 해주세요."
"아... 잠시만요. 고객님. 이게 C컬인가요? S컬인가요?"
나는 C컬과 S컬의 차이는 잘 모르지만, 내 기억엔 단발머리를 하고 C컬을 했을 때 머리가 삼각김밥 모양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C컬은 피하고 싶다.
"저번에 C컬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너무 동그랗게 나와서 S컬로 해주세요. 근데 제 머리가 파마한 후에 축축 처지기도 하던데요."
"그러시면 제가 고객님 머리를 오늘 처음 본 거라서요. 파마가 어떻게 나올지는 해봐야 알긴 하는 데 방법은 2가지예요. 조금 얇게 말아서 풀어질 걸 기대하느냐, 아니면 굵게 말아서 모험을 걸어보느냐요. 이번에 한 번 해보고 나면 다음번에는 제가 고객님 머릿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더 잘할 수 있을 거고요."
이렇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쓰는 파마약에 따라 내 머리가 어떻게 화학반응을 할지 나도 원장님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상의를 해 나갔다. 전에 다니던 육지의 단골 미용실에서는 원장님이 그냥 '이렇게 해요.'라고 답을 정해주셨었는데 그렇게 하는 방식은 그 방식대로 편하고 좋았었지만, 이번에 만난 원장님은 내 얘기를 듣고 스타일을 계속 맞춰주시려는 모습이 정말 감사했다.
"저, 그러면 얇게 말고 다음에 할 때는 굵게 말아볼게요."
아무래도 혹시 축축 처지는 것보다는 좀 촌스러워도 컬이 많은 게 나을 것 같았다. 긴 머리라 어차피 얇게 말아도 아주 크게 티가 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시면, 앞머리 내실 거예요?"
나는 앞머리를 내면 매번 잘라줘야 하는 게 너무 귀찮고, 기르고 싶어질 때 옆머리와 기장을 맞출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고는 좀 힘들다.
"앞머리는 안 낼게요."
"그럼 옆 라인은 커트하실 거예요? 커트하시면 이런 식으로 뒤로 넘어가는 형태가 되는데요..."
원장님은 내 옆머리를 잡으시고 동그랗게 뒤로 돌려주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한때 'I love you'를 열창하던 포지션 형님이 떠올랐다.
"아... 그건 좀..."
"그럼 옆 라인은 그대로 두고요. 그럼 이렇게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원장님과의 섬세한 토론을 마치고, 원장님의 본격적인 스타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원장님은 굉장히 손이 빠르고 목소리가 우렁찬 분이었다. 나는 원장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헤어디자이너로서의 장인정신이 깃든 프로페셔널함이 맘에 들었다.
두 시간여의 염색과 커트를 마치고, 원장님은 드라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고객님이 열흘 후에 하실 S컬은 완성되면 이런 모습이 될 거예요. 제가 지금 드라이로 느낌 잡아드릴게요. 오늘 한 번 보시고 다음번에 파마하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AI 시뮬레이션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미용실에서 이렇게 직접 드라이로 시뮬레이션해 주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원래 미용실은 드라이 값도 따로 받는 데, 이렇게 서비스로 예쁘게 말려주시면 손님은 진짜 대접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머리가 예쁘게 된 날은 어디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미용실을 나오며, 머리가 참 맘에 들었던 나는 급하게 모자리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언니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미리미리 예약해야 만날 수 있지만, 나랑 많이 편해진 뒤로는 예약 없이도 가끔 전화하면 만나준다.
"아니, 우리 강생이*는 머리가 맘에 들면 어디 약속에 가야지. 언니를 만나러 나오면 어떡해?"
카페로 들어오며 언니가 말했다.
"만날 사람이 언니밖에 없어요."
나의 말에 언니는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 비도 오고, 안 나오고 싶었지만... 우리 강생이가 또 이런 날 언니가 안 나오면 서운해할까 봐 나왔지."
"언니, 고마워요. 저 그 원장님 진짜 맘에 들어요."
"괜찮지? 그 원장님 원래 인기 많아. 그 원장님이 미용실 내기 전에 그냥 실장일 때 원장님이 샵을 옮기면 단골들이 막 같이 따라다니고 그랬어."
"진짜예요?"
"응."
나도 육지에서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은 원장님이 미용실을 다른 동네로 이사해도 버스 타고 찾아서 다녔긴 했었다. 아무래도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는 부분이니까 맘에 드는 원장님을 만나기 어렵다. 나는 이번에 모자리나 언니 덕분에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 미용실에 정착하게 되어 기뻤다. 열흘 후에 하게 될 파마에서도 S컬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었다.
*강생이: 강아지의 제주 방언
'모자리나 언니와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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