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획서를 쓰는 일은 그리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지만, 경쟁도서를 분석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는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가서 제주와 관련된 책을 한 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에 살다 보니 많은 관심을 두지 못해서 그런지, 어느새 시중에는 재미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꼭 인터뷰집이 아니어도 제주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내용이라든지, 어린이들을 위한 제주 자연 자원 소개 책이라든지 교육적인 다양한 콘텐츠가 많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좋은 책들 많네.'
그중에서도 나는 지금 쓰려하는 제주살이와 관련된 책을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인터뷰집은 많지 않았다. 아마 요즘 트렌드가 에세이라서 작가들이 인터뷰집을 많이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일일이 인터뷰할 사람들을 섭외하고 만나고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인터뷰집은 완성하기 꽤 쓰기 힘든 것 일지도... 어렵게 만들어서 팔릴지도 의문이고... 어쨌든 나는 계획했으니 천천히 자료를 찾아보면서 경쟁도서 분석을 마치기로 했다.
처음 찾아본 책은 육지 사람이 제주에 이주하게 되기까지 제주살이의 현실을 이야기한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제주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관점을 취하고 있으나 한쪽으로 치우쳐진 비판적인 시선이 많았다. 아마 제주에 같이 살고 있는 도민들이 읽다 보면 다소 거북한 내용도 많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책은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어느 부부의 이야기로 육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주도의 삶을 소개한 책이었다. 이 책은 좀 더 개인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담과 자세한 이야기가 많았으나 한 지역에서 이주민들하고 어울려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주로 서술하다 보니 제주도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보다는 어떤 편협한 시선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주변 이웃들을 보면 좋은 사람도 진짜 많은 데, 책을 계속 찾으면 찾을수록 제주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만 취한 책이 많아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니 마치 제주가 나쁜 사람들만 살고 있는 땅이 된 것 같다.
'아... 제주에 대한 좋은 점을 알릴 수 있는 그런 책은 없나? 도민과 이주민. 모두를 화합하게 하는 그런 인터뷰집을 써보면 어떨까?
나는 제주도에 필요한 지식, 기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성하여 제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여기서 태어났지만 외지로 나가는 사람도 많고, 호기심에 이끌려 제주도에 잠시 왔다가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지금 시점 제주에는 약 69만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곳이다 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이곳을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과연 제주는 시중에 흔히 나와 있는 책들처럼 모두가 안 좋은 땅에서 안 좋은 사람들과 살고 있는 것일까? 제주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자연을 제 집처럼 사랑하고 사람들을 존중하며 겸허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 많을 텐데,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그래. 주제는 「제주도에 감사하며 제주도에 기여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는다.」로 하자.'
나는 출판기획서를 쓰면 쓸수록 되도록 한 사람의 일상이 제주도를 헤치지 않고 제주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섬이라는 특수성과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서 모두가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해 나가는 방식으로는 전체의 생존이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한참을 연구한 결과 나는 책의 차별화 요소도 정했다.
「제주에 대한 사랑,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감사와 개개인의 삶이 제주도와 다른 도민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이런 종류의 책은 취지도 좋은 것 같고,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아직 이런 책이 없는 거지...? 왜 이런 책을 아무도 안 썼을까?'
기획서를 완성해 나가다 보니 책의 주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지금은 시작 단계라 내가 다 알 수는 없어도 글쓰기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콘셉트의 책을 어렵게 완성할지라도 딱히 책이 많이 팔리거나 작가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줄 것 같지도 않다.
'아... 뭐. 어차피 책 팔아서 돈 벌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기왕 글 쓰는 김에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나 해보자.'
책 한 번 제대로 써본 적 없는 내가 어디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건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내가 경험한 제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들과 화합하며 즐거운 일도 많이 겪고 있는데, 책에는 나쁜 점만 쓰여 있다 보니 여러모로 안타까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분석은 도민과 외지인은 서로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다 보니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소통이 불가한 것 같다. 나는 아마도 그간 제주에 살면서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좀 더 이해해 보고자 하는 갈증을 많이 느꼈나 보다.
'이런 인터뷰집을 쓸 거면 한 권으로는 파워가 좀 부족하지 않을까?'
세상의 수많은 책은... 특히 요즘은 더욱 잠시 출간되었다가 기억도 없이 사라지는 책이 많은 실정이다. 어차피 인터뷰집이 오래 걸릴 바에는 책의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시리즈물로 써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서없이 그냥 인터뷰해서 책을 쓰기보다는 한 권 한 권에 특정 콘셉트를 담아서 정성껏 쓰는 게 전체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한 권씩 묶어서 발행하는 게 독자의 입장에서도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 같고.
나는 첫 권으로 경영의 관점을 담아 제주도의 직업과 소명과 관련한 책을 쓰기로 했다. 그 안에 도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담는다면 제주도 삶의 생생함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책은 관광의 관점을 담아 제주에서의 치유와 힐링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나만 아는 숲길, 비경, 소소한 힐링과 치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에 대한 감사함도 전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은 레저와 스포츠의 관점으로 바다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 바다는 삶의 터전으로, 또 레저의 장소로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 바다 이야기도 적어 보면 어떨까? 서핑, 다이빙, 바다와 자연, 레저스포츠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해녀학교 등 레저와 삶의 터전의 대비되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담는 것도 제주의 생생함을 전하기 좋은 것 같다.
'뭐임? 나 지금 평생의 숙원 사업을 벌이는 거임?'
기획서를 쓰면 쓸수록 생각이 확장되고 이 인터뷰집에 대한 판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나는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제주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간 놓치고 있던 제주의 좋은 점을 다시 한번 느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출판기획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