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 님과 나는 함께 기획서를 쓰고, 적극적으로 회의를 하며 책에 대한 윤곽을 잡아나갔다. 둘이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무한대로 재밌는 생각이 샘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제주의 한 지역을 정해서 그곳의 숲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본다든지, 주요 여행지를 정해서 장소에 대한 에세이와 소개 자료를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그것이었다. 나는 이 경험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재밌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디어는 점차 커져서 기념품과 에세이, 사진과 컬러링을 넣은 새로운 형태의 책을 함께 만들어 보기로 했다.
3개월 정도 하리 님과 나 그리고 내가 섭외한 일러스트레이터 님은 함께 드로잉북 만들기에 매진했다. 우리의 책은 한참을 순항했으며 나는 그동안 드로잉북의 콘셉트를 짜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다. 기왕 드로잉북을 만들 거면 제주의 사계를 바탕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콘셉트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각 계절에 맞는 제주 여행지를 조사하고 그곳에 대한 정보를 모은 뒤 글을 써 나갔다.
또한 드로잉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시장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드로잉북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서점에서 다양한 드로잉북을 살펴본 결과 보통의 드로잉북은 250x250(mm)의 판형에 100장 정도의 드로잉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를 여행 콘셉트에 대입시켜 본다면 여행지 소개와 글이 책의 반을 차지하고, 드로잉은 최소 50장 필요했다.
하지만 곧 일러스트레이터 님은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기로 했다. 3 개월 정도 함께 열심히 준비했었기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님이 빠진 채로 남겨진 콘셉트와 글들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들이 뒤죽박죽 되었다. 어떻게든 지금까지 진행된 책을 완성하려면 새로운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드로잉북을 만들거나, 아니면 시집에 일러스트를 그려 줄 사람을 다시 섭외해서 시집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 새로운 모험을 해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기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만의 책 만들기에 돌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