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글 파일에 글을 쓰고 있던 내게 어느 날 운명처럼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용희 씨, 지금 도서관에서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어요. 혹시 용희 씨도 필요할지 몰라서 보내요.”
문자를 살펴보니, 어느 도서관에서 시민 강좌의 일환으로 책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글은 쓰고 있지만 책 만드는 법을 모르는 내게 이 교육은 꼭 필요한 것 같았다. 나는 도서관 홈페이지 링크를 클릭해서 자세한 프로그램 설명을 읽어 보았다.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강생 모집>
❑ 이런 분들께 추천해 드려요
◆ 언젠가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는 꿈을 갖고 계신 분
◆ 평범한 일상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보고 싶은 분
◆ 글, 그림, 사진 등 SNS에 보관만 해오던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분
❑ 운영기간: 매주 월요일 10:00~12:30/총 10회
❑ 모집인원 : 제주도민(성인) 20명
❑ 강의 신청 참고 사항 및 준비물 등
◆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이 가능하신 분
◆ 글, 그림, 사진 등 자신만의 콘텐츠가 준비되신 분
◆ 인디자인 및 포토샵 설치가 가능한 노트북 필수!
◆ 인디자인 프로그램 구입비용은 본인 부담(구독제)
◆ 잦은 결석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신 분
‘뭐야? 이런 게 운명이란 건가? 마침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교육이잖아...’
나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바로 수업을 신청했다.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은 총 10주로 제주시에 있는 대표 도서관에서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되었다. 첫 수업 전, 나는 인디자인과 포토샵이라는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뤄낼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약간 긴장되고 떨렸다. 내가 과연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서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컴퓨터는 영 자신 없었다. 인디자인은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포토샵은 들어봤는데... 원래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은 디자이너가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 아닌가?
'근데 뭐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거고...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차피 뭐든 배워야 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도전이 어려울 것 같다고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최종 결과물을 아마추어 같은 책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모 아니면 도. 밑져야 본전. 내게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이제껏 들어본 모든 말을 하며 나는 첫 수업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세상에 책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있을 거란 상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에 이 상황이 지금 현실인지 아닌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과연 책 만들기 수업에서 나는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
쭈뼛 거리며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책 만들기 수업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주는 책에 대한 열기가 무척 뜨겁다. 제주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지역서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지역서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는 인구 10만 명당 지역서점이 13.7 곳으로 집계되어 전국에서 인구 대비 지역서점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제주의 책 산업은 관광산업과 연계되어 타지역보다 책방이 활성화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제주도가 가진 좋은 자연 콘텐츠도 많아 책을 만드는 사람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 이름은 소라빵입니다.'
나는 이 곳에서 운명처럼 나의 책 스승님이신 소라빵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힘든 시절 매일 먹던 빵 하나가 위안이 되어 닉네임을 소라빵으로 지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래픽 디자인도 하시고 사진도 잘 찍으시며, 서점도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다. 사진작가에서 글 작가로, 글 작가에서 서점주인으로 제주의 한 마을에서 예술을 즐기는 선생님의 일상을 듣자니, 나도 덩달아 일상이 자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이곳에는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오셨을 텐데요. 독립출판물은 비교적 만들기 쉬워서 개인도 쉽게 책을 만들 수 있어요."
소라빵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독립출판은 기존의 출판사와 서적 유통망을 활용하지 않고, 개인이 출판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만들면 실질적으로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고 한다. 먼저 인쇄물 크기의 규격 즉 판형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출판 후에도 만족감이 높고, 장르의 제한없이 책을 출판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딱히 지금 내가 책을 써서 무슨 도움을 받게 될 거라는 책 쓰는 목적을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책을 출판하는 건 여러 이점이 있다고 하시고 기왕 이곳에 책 만드는 걸 배우러 온 김에 끝날 때까지 책이나 한 권 꼭 만들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제 소개는 마쳤고요. 여러분들도 각자 소개를 해보도록 할게요. 여러분이 기획하고 계시는 책도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우리도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반은 총 스무 명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 데, 나는 평소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이 곳에서 만나게 된 게 신기했다. 타로마스터 부터 농부, 화가, 가정 주부에 이르기 까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여러 사람들이 우리 반에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두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 만들기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뜨거워서 그런지 나도 이 수업을 끝까지 들으면 곧 책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소라빵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소개가 끝나면 각자 만들고자 하는 책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나는 지난 가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인터뷰집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끝날 때쯤엔 꼭 책을 완성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소라빵 선생님은 내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셨다.
"저, 이 수업은 총 10주의 수업인데요. 음, 인터뷰집은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혹시 인터뷰집을 10주 안에 완성할 수 있으신가요?"
"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터뷰가 단기간에 끝날 것도 아니고, 10주 안에 인터뷰집을 만들어 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 듯싶었다. 그리고 이 수업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수업이 아니고, 10주간 책 만드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첫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책상에 진열해 주셨고 집에 가기 전 자유롭게 책을 구경하고 가라고 하셨다. 나는 그간 시중의 책은 그냥 다 같은 책 이거니 생각했었지, 독립출판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책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너무 신기해서 선생님이 가져오신 책들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독립출판은 이렇게 바코드가 없는 책도 많아요. 결과물을 한 권만 찍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러분이 책을 끝까지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책을 살펴보고 있자니 세상에는 정말 신기한 책이 많았다. 어떤 책은 작가가 그림판으로 그림을 그려서 자신이 직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묶은 책도 있었고, 어떤 책은 국내의 어떤 지역에 여행 갔던 일을 그림으로 그려서 흑백으로 인쇄한 책도 있었다. 기존 대형서점에 있던 출판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들이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제주와 관련된 콘텐츠를 한 번 기획해 보셔도 좋을 거예요. 여행지나 여행 테마를 주제로 한 책도 잘 팔리는 데, 제주에 관한 책들만으로 서가를 꾸미는 서점도 많아서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나도 제주에 관한 책을 한 번 써봐도 좋을 것 같았다.
"선생님, 혹시 책을 출판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 인쇄비는 모두 개인이 부담하는 건가요?"
우리 중에 누군가 선생님께 질문했다. 질문의 요지는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면 작가는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원고만 넘기면 그 뒤로는 출판사에서 알아서 책을 유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립출판은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 건지, 그리고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대략 비용이 얼마나 들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네. 우리 수업은 독립출판이다 보니까 인쇄부터 유통까지 모두 개인 비용으로 하게 되는 거고요. 비용은 책 제작 사양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데 대략 40~50권 정도 내지를 흑백으로 해서 인쇄할 경우는 30만 원~3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비용은 수강생들을 위해 평균적인 비용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이 비용은 누군가 독립출판을 시작할 때 참고만 해야 할 비용인 것이고, 실제 책을 만들어 보니 인쇄소를 어디와 거래하는 지, 판형이나 종이 종류, 그리고 제작 부수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천차만별이었다. 요새는 인터넷 인쇄소가 많아 각 사이트에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책 제작 사양을 먼저 견적 내 보고 적절한 곳에 인쇄를 맡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들고 싶은 사양을 구현한 샘플책이 필요한데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셔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제작 사양의 책을 한 권 선정해서 가져오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그리고 다음 시간 수업에 오기 전까지 인터넷 카페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책 기획서도 올려보세요."
나는 선생님이 보여주신 독립출판물을 찬찬히 살펴본 후 집에 가서 책 기획서를 작성하면서 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좀 정리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