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작정 책 샘플 만들기

by 김용희

인터뷰는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그냥 글을 쓰면 저절로 책이 되는 건지...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드는 데 그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왠지 포맷이 있어서 거기에 업데이트 해나가면 수월할 것 같은 데, 그걸 어디에 물어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주변엔 혹시 책을 출간한 작가는 없나?'


작가나 출판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좋으련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가까운 곳에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 한 명쯤 있을 것 같아 계속 골똘히 생각해 낸 결과 언젠가 막연히 아주아주 먼 친척 수진이 언니가 전에 어떤 책을 한 권 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출간한 수진이 언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집안 어르신들에게 부탁해서 언니와 연락을 취했다. 전화 통화에서 언니는 몇 권의 책을 출간했고, 심지어 그 책이 잘 팔렸으며, 지금은 여기저기 강의를 다닌다고 했다.


“언니 대단하시네요. 출판시장이 어렵다던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저는 펀딩을 받기도 했고요. 뭐 저는 다른 사람들이 비슷하게 따라 하기 힘든 전문 분야라 더 좀 메리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잘 모르겠으면 일단 그냥 책을 써 봐요. 쓰기만 하면 유통하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아 그렇군요. 뭐든 일단 쓰면 된다는 거죠? 근데 혹시 유통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유통을 하려면 일단은 사업자등록번호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ISBN 번호를 신청할 수 있거든요.”


“사업자요?”


사업자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좀 복잡한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직 책을 쓰지도 못했는 데, 사업자라니... ISBN이란 국제 표준 도서 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를 말하는 것으로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방법에 의해 부여하는 각종 도서의 고유 식별기호를 말한다. ISBN을 신청하면 바코드 형태로 한 책에 13자리 번호를 받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처음 도서를 출판하는 경우 도서를 발행하는 발행처에서 발행자 번호를 받고, 출간 예정 도서의 도서 번호를 발급받아야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발행자 번호를 발급받으려면, 국내 관할 시·구청에 출판사 신고가 완료되고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발급받은 출판사만 가능하기 때문에 수진이 언니는 내게 책을 유통하려면 사업자등록번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중에 책을 만들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립출판에서 ISBN을 발급받고 안 받고는 작가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 출판물을 찍어서 ISBN 없이 유통하는 경우도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에 유통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어 책을 영구 보존하게 하고 각종 도서관에도 납품시키고자 하는 경우는 ISBN을 발급받는 게 좋다. 만약 출판사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ISBN만 발급받고 출판사는 운영하고 싶지 않으면 ISBN을 발급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으므로 업체를 잘 선정해서 ISBN을 신청할 수 있다. 이때는 번거롭게 출판사를 등록할 필요 없이 ISBN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조에 따라 도서에는 저자, 발행인, 발행일, 출판사, ISBN을 판권지로 기재해야 하는데 이때 출판사명과 발행인은 ISBN을 발급 대행한 업체명과 그 업체의 대표자명으로 판권지에 기재하면 된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일단은 그냥 계속 글을 써나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언니가 말해주는 내용들은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수준이 높은 다음 단계의 내용들이라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언니에게 지금 당장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 혹시 책 쓰는 데 형식이나 문서 포맷이 있나요?”


“포맷이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쓰면 돼요.”


아니, 분명히 책 크기나 글자 크기. 그리고 책을 만드는 방법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거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니는 출판사와 함께 일을 했던 거라 포맷은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고, 나처럼 독립출판을 하게 되면 편집자의 역할도 직접 하는 거라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언니는 그때 내게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나는 책 만들기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것을 속 시원히 다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모든 게 막연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비록 내가 지금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스스로 어떻게든 시작을 해야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아... 그냥 한 번 해봐. 내 방법대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나는 어차피 모르겠는 마당에 일단 한글 파일에 글을 쓰고 책 모양으로 오려서 샘플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너무 막연하지만 이렇게 가지고 다니다 보면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무작정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에 만들고 싶은 모양과 크기의 책을 골랐다. 꺼내서 자로 하나하나 재다 보니 감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원하는 크기의 책은 대략 A5 크기인 것 같았다. 나는 한글파일에서 용지 크기를 A5로 설정하고 원고를 업데이트했다. 뭐 기왕 이렇게 시작한 김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책 표지로 맘에 드는 이미지를 하나 골라 표지도 만들었다. 작성된 원고를 인쇄하고 크기에 맞게 재단해서 스테플러를 찍으니 왠지 꽤 괜찮은 책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뒤로 인터뷰 대상이 한분 한분 추가될 때마다 이렇게 단편소설처럼 원고를 프린트해서 들고 다녔다. 이렇게 하면 인터뷰 해주실 분들에게 내가 만들 책에 대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었고, 나 자신도 가까운 미래에 이런 책이 나올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여전히 책 만드는 법을 몰랐지만, 이렇게 샘플 책을 갖고 다니는 것은 현재의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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