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찾아 오름에 온 경험은 또 처음이네?'
책을 쓰는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닭을 찾으러 도두봉에 오다니...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부터 스펙터클하게 흘러가는 이 상황이 나조차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닭을 찾아 이곳까지 온 만큼 오늘은 열심히 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나는 차를 주차한 후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봤지만, 샅샅이 뒤져도 도두봉에 닭이 있다는 말만 있지, 도두봉 어디쯤에 닭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잘 모르겠으니 일단 정상으로 가자.'
나는 막연히 정상에 올라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닭은 흔적조차 없었다.
'진짜 여기는 닭이 있을 곳이 없는데?'
나는 혼자서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오늘 닭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정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여기서 닭은 본 적이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서 닭을 보신적 있으세요?“
“닭이요? 여기 닭이 있대요?”
내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이었다. 닭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모르겠다고 하고... 과연 나는 오늘 여기서 닭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이리저리 도두봉을 돌아다니던 나는 도두봉 중턱에서 귀여운 뱀이 그려진 '뱀 주의' 표지판 앞에 멈춰 섰다. 제주의 표지판들은 동물이 스스로 자신을 조심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나는 혹시 지금 만드는 책에 이 표지판 사진도 넣으면 재밌을 것 같아 정성스레 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 나는 표지판 옆에 붙박이처럼 박혀 선 채로 지나가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닭의 행방을 물었으나 거짓말처럼 모두 닭의 행방을 모른다고 답했다.
어떻게든 오늘 닭을 만나고 싶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찾아봤으나 도두봉에는 닭이 살지 않나 보다.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으니, 이제는 뭐 닭을 찾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긴 아쉬워 몇 분에게만 더 물어보고도 닭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 진짜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근처에 사는 것 같은 편안한 복장을 한 분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도두봉에 자주 운동 오시는 분들이 아무래도 닭을 보셨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동네 산책을 나온 듯한 옷차림의 한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역시 "모르겠다."였다. 다음으로 애완견을 데리고 내려가는 사람 뒤에서 걷던 등산복장을 한 남자분께 다가가 물었다.
“혹시 여기 닭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닭이요?”
“네 닭이요.”
“네. 알지요. 저기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도두봉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어요.”
나는 닭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신다는 남자분의 말에 혹시 내가 지금 뭘 잘 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곧 흥분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정말 닭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세요? 아래쪽 입구에 있는 표지판이요? 그리고 그다음에 어디로 가는데요?”
닭의 소식을 반가워하면서도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내 얼굴을 보며 왜 닭은 찾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은 채 그분은 내게 말했다.
“음. 그러면 저랑 같이 갑시다. 어차피 운동하러 왔으니까... 같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그 뒤로 나는 채 통성명을 하지 못한 그분을 <도두봉에서 만난 이>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닭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닭은 원래 자신의 생활 반경을 잘 벗어나지 않아요. 닭을 만나려면 닭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거죠."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나와 함께 걸으며 닭을 찾는 법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분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 보니, 거짓말처럼 동백나무 밑에 수탉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원래 여기에 암탉도 있었는데... 어느 날 암탉이 없어진 뒤로 얘가 영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사라진 암탉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셨지만 나는 혹시 어렵게 찾은 수탉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수탉은 원래 운동성이 없는 동물인지 아니면 정말 암탉이 사라져서 우울해서 그런 건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증명사진 찍듯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렇게 무사히 수탉 촬영을 마치고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물었다.
“여기 도두봉 말고 혹시 또 관광할 데가 있나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도 차분히 대답해 주셨다.
“저는 항상 이쪽 무지개 해안으로 걸어 다니는 데 여기 걷기 좋아요. 여기서부터 걸어서 무지개 해안 끝 유명한 돈가스집까지 걸어가면 걷기 딱 좋지요.”
그 뒤로 나는 그분께 해안도로 관광 안내를 받았다. 역시 그 장소를 잘 아는 지역주민께서 직접 설명해 주시니 동네 곳곳의 좋은 곳을 알 수 있어 좋았다. 특이하게도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네”라는 대답을 활기차게 하는 분이었다. 어느 책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요청할 때 세상을 향해 “네”라고 크고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복을 쉽게 받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분이 그런 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일 년에 100번 정도 배낚시를 나간다고 하셨는데, 젊었을 때 벌어놓은 돈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낚시를 즐기는 점, 산에서 어쩔 줄 모를 때 우연히 만나서 도움을 받게 된 점과 더불어 그분의 온화한 미소 덕분에 나는 이분이 '도두봉에 사는 신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평범한 일상에서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는 게 귀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이분을 신선이라고 생각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분께 내가 평소 답을 찾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던 것들을 질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저기 제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있는데요. 저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하기 싫은 건 다 이유가 있을 텐데요. 억지로 하려고 하면 탈이 나죠."
"그럼, 새로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까 봐 두려울 때는요?"
"끈기를 가지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요."
"이런 일은 이런 점 때문에 못 할 것 같고, 저런 일은 저런 점 때문에 못 할 것 같을 때는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차근차근하다 보면 다 될 거예요."
이분께 질문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뭔가를 시작함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말씀하시는 이분과 대비되는 나의 대화방식을 느끼면서, '내가 세상의 요구에 너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분은 어떤 질문에도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말을 아끼고 아예 침묵했다. 이 분과 걷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마음이 좀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마음이 딱 붙어버려서 뭔가 굉장히 조급해지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감정과 좀 떨어지게 되어 자신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더 평온해지고, 자신의 감정과 떨어져서 많은 것들을 중립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게 좋았다.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헤어지면서 내가 어떻게 해서 이 길로 들어오게 됐던 지와 상관없이 어찌 됐든 책을 쓰는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앞으로는 이 여정에서 좀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매개로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