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 만들기 수업이 끝난 후 소라빵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 주 주말에 한라 체육관에서 '제주북페어'가 열리는데요. 독립출판 업계에서는 도내 가장 큰 행사이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씩 구경해 보세요."
'제주북페어'는 제주에서 봄에 열리는 독립출판물 박람회이다. 전국의 독립출판물 제작자, 소규모 출판사, 독립 서점 등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직접 만든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하며, 독립출판 관련 세미나를 운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제주북페어'에는 올해 총 200여 개의 팀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북페어? 북페어는 어떤 행사일까?'
나는 당시 책을 만든다고 호기롭게 도전은 하고 있었으나, 사실 독립출판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행사를 구경하게 되면 독립출판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토요일 오후 한라체육관으로 향했다.
'우와. 내 생각보다 훨씬 큰 행사인가 봐...'
행사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직접 방문해서 느낀 현장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여기저기 걸린 현수막과 천장의 장식이 행사 열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체육관 내 무대 옆쪽으로는 이 행사를 주최하는 도내 한 도서관의 독립출판물 워크숍 참여자들이 출판한 책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고, 관중석에는 아침부터 행사에 참여해서 점심때를 놓친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독립출판이 원래 이렇게 인기가 많나?'
나는 제주가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니 그 생생함이 직접 와닿았다. 이번 행사는 참가팀 한 팀당 하나의 부스가 배정되는 것 같았는데, 큰 체육관은 이미 참가자들의 부스로 꽉 차 있었다.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하지?'
사람이 워낙 많고, 부스도 많아서 처음에는 좀 얼떨떨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첫 번째 부스부터 마지막 부스까지 꼼꼼히 구경해 보기로 했다. 저마다의 부스는 개성 있는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고 그 부스와 관련한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놓여 있었다. 부스를 둘러보니 부스별로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스티커를 나눠준다거나 기념품을 증정해 준다거나 하는 등의 다채로운 이벤트로 인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독립출판물은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했다. 부스를 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출판물 제작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떤 분은 꽤 늦은 나이에 어반스케치에 입문하셨는데 생각보다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풍경화를 그리다가 그림이 모이면 하나둘 책으로 출판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은 서핑이 취미라 제주에 자주 내려오는 데, 직접 그린 어린이용 캐릭터로 동화책도 만들고 있어서 이번에 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이 창의적인 사람들의 자유로운 작품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일상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독립출판물의 매력에 빠지나 보다. 그렇게 한둘씩 부스를 구경하던 나는 예쁜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어떤 부스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그림을 그린 작가님이 직접 나와계셨는데 워낙 인기 있는 작가님이라 그런지 사람들을 응대하시느라 바쁘셨고, 나는 잠시 부스에 머물며 그림을 감상했다. 그분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참 예쁘고 따뜻했다.
'나도 이렇게 예쁜 책을 만들면 좋겠네.'
부스를 돌다가 나는 또 예쁜 색연필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어느 부스 앞에 멈춰 섰다. 그 부스에도 작가님이 직접 나와 계셨는데, 이분의 그림도 예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작가님께 말을 걸게 되었다.
"작가님, 이 그림을 전부 직접 그리신 거예요?"
"네. 이 책은 저의 첫 책인데 제가 색연필로 직접 그린 거예요."
"우와. 그림 진짜 예쁘네요."
작가님은 첫 책 외에도 세 권의 책을 출판한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중에서도 색연필로 그린 작가님의 첫 책이 가장 맘에 들어 책을 구매하고 작가님께 사인도 받았다.
여러 부스를 돌면서 나는 예쁜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책에 자꾸만 눈이 갔다.
'혹시 내가 지금 예쁜 일러스트로 그려진 책을 만들고 싶은 건가?'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사람들이 제주에 여행 왔다가 기념품 대신에 사 갈 수 있는 여행책인데 아무래도 그런 콘셉트를 구현하려면 디자인을 예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북페어에 와서 자꾸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에 관심을 두는 걸 보니, 내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그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난 평생 살면서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는데? 그러면 그림 작가님을 섭외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부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한된 예산으로 책을 출판하는 건데, 지금 상황에서 디자이너를 쓴다는 건 좀 무리이지 싶다. 나는 그림은 자신이 없으니까, 나중에 일러스트 대신 사진으로 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지 생각했다. 일단 책 만들기에 대한 고민은 조금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계속 북페어를 즐겁게 구경해 보기로 했다.
부스를 지나다 보니 동그랗고 까만 안경을 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분 누구셨지? 분명 아는 분인데?'
자세히 보니 소라빵 선생님이셨다. 나는 놀라서 얼른 부스로 다가갔다.
"선생님!!!"
"아, 용희 님. 오셨어요?"
"선생님, 선생님도 북페어에 참가하시는 거였어요?"
나는 선생님이 서점을 운영하시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북페어에 참가하시는지는 몰랐다. 소라빵 선생님을 밖에서 뵈니 교실에서 뵙는 것보다 훨씬 반가웠다. 선생님의 부스는 서점 이름을 세로형 명패로 세워 놓았고, 빈티지 콘셉트로 해서 그릇도 판매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부스는 느낌이 또 색달랐다.
"마침 이 책의 작가님 오시네요? 이 책이 오늘 저희 부스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이에요."
선생님은 선생님이 판매하는 책 중에서 한 인터뷰집을 추천해 주셨다. 때마침 그 책을 쓴 작가님이 부스에 놀러 오셔서 나는 책을 구매하면서 작가님 사인을 받았다. 소라빵 선생님도 사진을 많이 넣은 빈티지 콘셉트의 책을 발간하셨는데, 나는 선생님의 책도 한 권 구매했다. 나는 선생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사진 찍어 드리고 다음 월요일 수업에서 뵙자고 말씀드렸다.
북페어를 나오면서 나는 오늘 행사를 통해 독립출판물이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게 된 것 같았다. 확실히 대형 서점에서 보던 기성 출판물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책들이 많았다. 기존에 보던 책들보다 자유롭고 더욱 개성이 넘친다고나 할까? 독립출판물에 있어서 어떤 표현의 경계는 따로 없는 듯했고 그냥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확실히 구현해서 나만의 느낌을 보여주는 되는 것 같았다. 교실에서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내 책의 콘셉트도 다른 창작자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나니 조금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구매한 색연필 일러스트가 예쁜 책, 인터뷰집, 선생님이 만드신 사진이 들어간 책은 어쩌면 내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무의식은 미래의 작품과 관련한 책들을 고른 건 아닐까?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독립출판과 관련한 다른 행사들도 다녀보면서 생각의 폭을 조금씩 넓혀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