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점점 산으로 가는 책 콘셉트

by 김용희

동물을 만나는 이야기와 여행지 소개자료로 책을 만들다 보니, 취재할 수 있는 장소가 상당히 제한적이라 글의 분량이 적었다. 기획안으로 작성했던 책 구성 내용에 따르면 여행지와 관련한 에세이와 찾아가기 주소, 장소 사진 그리고 짧은 시 한 편을 선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10주 안에 책을 한 번 완성해 볼 요량으로 이 중 시의 비중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첫 장에는 동물 만난 이야기를 쓰고 관광지 소개를 한 후 그 장소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성을 시로 엮으면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제본으로 완성된 책을 보니 이 부분이 꽤 무리수였는지, 나는 상당히 난해한 콘셉트의 책을 만들어버렸다.


당시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원고를 검토해 보니 처음 기획에서는 조금 멀어진 형태로 여행지 정보 보다 시가 더 많아, 오히려 이 책은 시집처럼 완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어떤 책을 만들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콘셉트를 다시 시집으로 세팅하고, 도서관에 가서 요즘 인기 있는 시집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책을 만들 때는 일단 글을 모두 써 놓고 목차도 미리 구성해 놓은 뒤,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는 등의 책 만들기에 돌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가 책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기 쉽고, 뜻하지 않은 다소 어색한 결과물이 완성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시장조사를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 목표는 관광 기념품 대신 제주에서 사 갈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흑백으로 인쇄된 시집은 너무 진지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수채화 혹은 색연필 일러스트가 어우러진 책은 잘 만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한 권을 모두 그림으로 채울 자신은 없어서 그동안 찍어둔 사진을 적극 활용하고 일러스트는 장식처럼 조금만 넣어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책 내용보다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부족한 부분이 너무 크게 느껴졌었는지 책 내용보다 디자인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었다.


'하지만, 사진 실력도 없고 그림 실력도 없는 내가 어떻게 예쁜 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고맙게도 이즈음 주변 지인들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사진을 잘 찍는 친구들과 동네 언니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주기 시작했고,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도 보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감사하게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름아름 작업해 보다가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어떤 그림 작가에게 받은 그림이 아무리 좋더라도 내 책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맞지 않으면 그 그림을 쓰기 어렵다는 점이 있었다. 또한 글에도 문체가 있는 것처럼 그림에도 그림체가 있어서, 책에 넣을 때는 책의 첫 장부터 끝까지 그림체가 일정한 게 정돈되어 보이는데... 한 책에서 그림 작가가 다 다르면 책이 일관되어 보이지 않아 너무 아마추어 같아 보인다는 점도 있었다. 만약에 이런 부분이 싫어서 유명 작가에게 일러스트를 부탁한다면 페이지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해서 비용이 예상보다 너무 많이 들 수 있다는 것도 문제였고, 글에 비해 그림이 너무 화려하다 보면 책의 내용이 그림에 다 묻히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문체와 어울리는 그림인데...


'이거 참, 쉽지 않네? 결국 그림은 내가 그려야 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하고, 집에 있는 연습장을 하나 꺼냈다. 그냥 무작정 수성펜으로 선을 그리고 색연필로 색칠했다.


'이게 잘 될 그림인가? 아닌가?'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그림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냥 보기에 일러스트가 나름대로 귀여운 것도 같았지만, 이 그림을 컴퓨터로 옮겨서 책에 넣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고 해서 이 일러스트가 책 내용과 어우러질지는 더 의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계속 의문만 쌓여갔지만 지금 단계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해보자. 경험이 없으니 예측 불가능하잖아?'


일단 지금 단계에서 그림을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주말 내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초보는 문구나 생활용품에 그려진 그림을 참고하면 그리기가 좀 더 수월했다. 주말 동안 최대한 많은 그림을 그려놓고, 월요일에 소라빵 선생님께 그림들을 컴퓨터로 옮길 수 있는지 여쭤보기로 했다.


그다음 월요일 수업 시간에 나는 소라빵 선생님께 그림에 대해 질문했다.


"선생님, 혹시 이 일러스트 책에 넣을 수 있나요? 집에 프린터기에 딸린 스캐너가 있긴 한데요... 그 스캐너로 작업하면 그림이 너무 흐릿하게 나올 것 같은데요. 혹시 좋은 방법이 있나요?"


"이 그림을 책 만들기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죠. 작가들이 쓰는 좋은 스캐너가 없을 바에는 이렇게 핸드폰으로 찍어서 포토샵으로 작업하는 게 나아요."


선생님은 내 그림을 핸드폰으로 직접 찍으신 후 그림을 일러스트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포토샵으로 작업하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건 핸드폰으로 그림 잘 찍는 법, 포토샵에서 편집 후 png 파일로 만들어 내보내는 법, 그리고 그 파일을 다시 인디자인에 넣어 꾸미는 법 등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거 참 대박이네요."


일러스트를 그리면서도 기술적인 부분을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고민이 많던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하니 한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좋았어.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는 거지, 뭐.'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니, 그 뒤로 나는 좀 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사인펜으로 스케치하고 수채 색연필로 칠하는 방법으로 그렸는데, 다른 도구들은 어떤 느낌을 낼지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림 도구들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무작정 화방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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