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화방으로 가요.

by 김용희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평생 가본 적 없는 화방에 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구점이라면 쉽게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화방은 뭔가 미술에 잘 아는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닌가? 나는 미술을 해본 적이 없기에 혼자 덜컥 화방으로 들어간다는 게 너무나 어색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궁금한 미술용품에 대한 정보를 모두 시원하게 얻을 수가 없어서 결국 용기를 내어 화방에 가보기로 했다.


화방에 가보니 이곳에 온 손님들은 이미 모두 미술 전문가들인 것 같았고, 주인에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원하는 물건을 알아서 척척 사 갔다. 나는 어떻게 질문해서 무엇을 사가야 할지 잘 몰라 멀뚱멀뚱 화방을 배회하다 용기를 내서 화방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제가 책에 일러스트를 그리려고 하는데요. 도화지에 일러스트를 그린 후에 사진을 찍어서 컴퓨터로 옮기려고 하거든요... 혹시 이런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용품이 뭐가 있을까요?"


내가 물으면서도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평소 그리고 싶던 그림을 찍은 사진을 청년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청년은 고맙게도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음... 제 생각에는요. 일러스트를 그리시려면 쨍한 색감이 좀 필요하실 것 같아서 포스터컬러를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문가용 포스터컬러는 좀 비싼 것 같은데, 이것보다 좀 더 저렴한 건 없나요?"


"아... 그건 여기 없어요..."


"그러면 붓은 어떻게 하죠?"

"붓은 사람들이 편하게 많이 쓰는 브랜드 12호 정도로 그리시고, 나머지는 세필 몇 개를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요?"


"저기, 그러면 종이는 어떻게 하나요? 스캐너가 없어서 하얗고 좀 반들반들한 면이 있는 종이면, 사진 찍고 편집하기에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엽서 크기의 세목 스케치북을 한 번 써보세요."


밖에서 보던 화방의 이미지는 왠지 너무 전문적인 느낌이 강해서 나처럼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가면 성심껏 응대해 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로 보였었는데, 이 청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청년이 추천해 준 상품을 구매하고 그 뒤로도 미술용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곧잘 화방에 들렸다.


드디어 구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사라봉 토끼를 그렸다. 내 마음으로는 사라봉의 풍경과 토끼가 뛰어노는 장면을 정말 예쁘게 그리고 싶었었는데... 막상 그려보니 초보자가 토끼를 그리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토끼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간신히 두 마리를 그렸다.


나는 이번에는 배경을 그려보기로 했다. 사라봉 풀밭과 멀리 보이는 등대 그리고, 바다와 하늘을 그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채색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린 종이 크기는 엽서 사이즈였는데, 막상 채색하려 하니 색칠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포스터컬러는 색이 너무 쨍하고 나는 색을 칠하는 기술이 없어서 그런지 어렵게 완성한 그림은 상당히 촌스러웠다.


'헐, 이거 참 쉬운 일이 아니네?'


한참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일단은 배경과 일러스트를 따로따로 그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 토끼는 잘 그렸는데, 배경을 칠하다가 망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포스터컬러를 팍팍 칠해서 전체 배경을 그리고, 다른 종이에 동물 일러스트를 그린 뒤 수채색연필로 채색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각각을 컴퓨터에 옮기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괜찮은 것 같은데?'


그림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그려서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많이 들었지만, 이 방법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그냥 계속 이렇게 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재료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내 문체에 어울리는 일러스트의 느낌을 찾아보려 했다. 물감으로 배경을 칠해보기도 하고 스케치북 재질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하고, 라이너의 굵기도 다르게 바꿔 보면서... 혼자 그렇게 하다 보니, 완성된 그림에선 사실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내겐 재료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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