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기

by 김용희

책의 진도는 어느덧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간 글도 많이 쓰고 일러스트도 활발하게 그렸다. 하지만 계속 책을 만들면 만들수록 정작 내가 궁금했던 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점이었다. 나는 책을 완성하기 전에 책의 방향이 너무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의 느낌이 어떤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먼저 성희 님에게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성희 님은 평소 책을 좋아해서 다독을 하는 편이라 책을 읽는 속도도 무척 빠르고 책에 대한 감각도 빠르다. 나는 성희 님이라면 내 책을 읽고 내게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거로 생각했다.


"성희 님, 이제 책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요. 혹시 어떤 것 같은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용희 님, 제가 보기엔 책 내용도 담백하고 좋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페이지 수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그건 괜찮은 건가요?"


"네, 성희 님. 사실 저도 책을 읽어보면서 좀 짧은 느낌도 들었는데요. 독립출판에는 정해진 분량은 없다고 하던데요. 제 책과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은 보통 140~150페이지로 완성하는 것 같아서 일단 그 정도로 만들어 보긴 했어요. 아마 앞으로 장소를 두세 군데 더 취재하면 한 160페이지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아직 인쇄해 보지 않아서 모르는 데, 페이지 수가 늘어나면 제작비용이 올라서 구매자분들이 꺼리신다고도 하던데요. 사실 저도 분량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두툼한 재질의 종이를 쓰면 전체적으로 책이 더 두껍게 보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지금 이 분량은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드니까 이왕 책 내시는 거 내용을 좀 더 늘리면 어떨지 싶어요. 제가 보기엔 책이 술술 읽혀서 좀 더 늘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성희 님 그리고요. 분량을 늘릴 때 여행 정보를 좀 늘리는 게 좋을까요? 시를 늘리는 게 좋을까요? 이 책은 여행 정보랑 시 구성인데..."


"그건... 용희 님이 판단하시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작가시니까..."


나는 이날 처음으로 '작가'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무슨 작가가 이렇게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걸까?'


나는 실력이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지만, 경험 부족으로 인한 의사결정의 모호함을 메꾸기 위해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다음으로 나는 혜진 언니에게 원고 파일을 보냈다. 혜진 언니는 예고를 나와 미대를 졸업한 지인으로 책을 만드는 동안 틈틈이 내게 디자인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부족한 부분은 언니에게 물어보고 그걸 개선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제껏 그림을 그려 왔다.


"언니, 이제는 제 책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요. 혹시 지금까지의 느낌이 어떤 것 같은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용희 씨, 제가 보기에 그림은 저번보다 훨씬 좋네요. 저는 용희 씨 일러스트가 글이랑 분위기가 잘 맞아서 좋아요. 자신만의 색깔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요."


"저의 색이 잘 드러난다고요?"


"네, 그림은 자신의 색이 잘 드러나면 좋은 그림이에요."


"그런가요?"


나는 평소에 그림은 특별한 사람들이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고, 누구나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어떤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로 생각했었는데... 단지 나만의 색이 드러나면 좋은 그림이 된다니? 이건 정말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개인의 창조적 활동인데, 이 중 개성있는 자기표현을 빼놓고는 어떻게 예술을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간 나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호한 것들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해 온 건 아닌가?'


이날 나는 혜진 언니의 말을 듣고 작업의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기로 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하자.'


나중에 책을 다 완성하고 보니, 독립출판에서는 결국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어 개성 있는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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