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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Jun 21. 2024

5. 커피를 쏟았던 날

옆 동네에 약속이 있어서 늦게까지 운영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오늘은 야근 모드로 밤늦게까지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가장 큰 벤티사이즈 커피를 시켜서 테이블 위에 놓고, 다리 쪽에 있는 플러그에 노트북 전원을 연결했다.


처음 온 커피숍이라 어떤 와이파이로 잡아야 할지 몰랐던 나는 카운터에 와이파이 연결에 관해 물으러 갔다.


이렇게 눈에 띄게 행동할 줄 알았다면, 운동복 바지에  면티를 입고 오진 않는 건데... 옆 동네라 너무 편하게 온 건 아닌지...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노트북 전원 코드에 발이 걸려 그만 벤티 사이즈 커피를 모두 쏟아버렸다.


'맙소사...'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수근 대는 것 같아 창피함이 밀려오는 것도 잠시, 어차피 이 큰 커피를 다 마셨으면 잠도 안 오고 배가 아플 것 같았다며 잠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도움을 청하러 카운터에 갔다.


"저, 커피를 쏟아서요. 닦을 게 좀 필요해서요..."


친절한 직원분은 내게 종이 타월을 주시며 말했다.


"이걸 쓰세요."


일단 받았지만, 아주 많이 쏟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고 걸레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많이 쏟았거든요."


직원분은 난처해하는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시곤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먼저 닦고 계시면 제가 곧 가겠습니다."


그렇게 종이 타월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온 나는 테이블을 보자마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엎어놓은 핸드폰 화면은 이미 커피가 흘러있었고 노트북 여기저기에도 커피가 묻어 있으며 아래쪽 콘센트에 꽂혀있던 충전 케이블 선은 바닥에 쏟아진 커피에 잠겨버렸다.


'에효, 작은 커피 시킬걸... 커피 양이 어마무시 하네.'


커피 마실 때는 벤티 양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았는데 쏟아놓고 보니 수습이 어려울 만큼의 양이었다.


'앗.'


바닥을 보니 새로 산 흰 신발도 소나기가 내린  처럼 커피가 다 튀어버렸다.


어쨌든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수습하기 바빴던 나는 케이블 선이 망가질 것 같아서 얼른 주워서 닦고 핸드폰도 닦았다. 테이블을 다 닦고 바닥을 닦으려는 데 아까 그 친절한 직원분이 대걸레를 들고 오셨다.


"아... 정말 죄송해요. 어쩌다 커피를 쏟았는지..."


친절한 직원분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습니다. 고객님께서도 속상하실 텐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마음을 이해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고맙고 행복해졌다. 내가 직원분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말을 해드릴 수 있었을까? 비록 커피는  마셨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옆 동네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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