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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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즈음이었을까, 2013년부터 사용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닫아버렸다.
500명 가까이 되던 친구들, 그분들과의 추억, 페이지의 유용한 정보들을 뒤로하고 과감히 '비활성화'를 했다.
한편으론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부담을 덜게 됐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관심해지고 편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자유롭다.
2013년 10월 즈음 군대 일병 시절, 싸지방이라 부르는 군대 PC실에서 2011년부터 사용하던 페이스북 계정을 탈퇴했다. 그때는 친구가 1200명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치곤 꽤나 많은 숫자였다. 2년 간의 대학교 학생회 생활, 밴드 동아리, 대외활동 등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숫자가 지난 대학생활을 보여주는 지표인 것 같아 웃기게도 그 숫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군에 입대하고 나서 보니 마음 놓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이 안되더라. 어느 순간부터 그 숫자에 집착하고 있던 나는 "120배가 허수네..."라는 조금은 웃긴 회의감을 느꼈고 계정에 있던 사진, 나눈 이야기들을 백업한다든지의 과정 없이 탈퇴했다. 탈퇴를 결심한지 30초 만에 3년의 세월을 지워버렸다. 그리고선 '정리라도 할걸...' 하고 후회했다. 그럼에도 외로웠는지 1주쯤 지났을까? 결국 계정을 새로 만들고 어림잡아 300명과 다시 친구를 맺었다.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도 주고받고 페이지에 재미있거나 유용한 것들을 보면서 즐기고.. 덕분에 군생활 동안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역하는 날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전역한 소식과 전역하면서 군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올리면서 '좋아요'가 얼마나 찍힐지 기대하고 그걸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과 마주한 것이다. 꼴 보기 싫었고 추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 타인의 관심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관심종자'가 되어 하루 종일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나의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타인에 의해서 그만치 휘둘리는 모습이 싫었다고 말하면 되려나.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연락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고 유용한 정보와 글들을 읽을 수 있는 등 수많은 이점이 있다. 게다가 저비용으로 홍보를 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플랫폼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표면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에 괴로웠고 게다가 정보의 홍수에서 필요한 것을 선별하는데 소요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까웠다. 때때로 오해와 질투를 불러와 소중한 사람과 다투기까지 하니 나에게 페이스북은 더 할 이유가 없었던, 죄악(罪惡)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인터뷰에서 "I think they(players) are responsible for their actions, responsible for what they said on Twitter. I don't understand it, to be honest with you. I don't know why anybody can be bothered with that kind of stuff. How do you find the time to do that?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in your life without that. Get yourself down to the library and read a book. Seriously. It is a waste of time."라고 했던 게 용기를 더해주었다.)
그렇게 2015년 6월 나는 페이스북 계정을 굳게 닫아버렸다.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
책이라면 질색하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일의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의 1973년 작품 '모모'를 읽은 뒤로 180도 변했다. 그 짧은 동화가 내게 독서를 즐거운 일로 만들었고 '시간과 꿈의 소중함'에 대한 통찰도 주었다. '글'의 가진 힘을 느꼈고 나도 자연스럽게 글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엔 입시 논술을 하면서 그 욕구를 풀었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부터는 때때로 페이스북에 통찰을 가장한 뻘글을 싸곤 했는데, 위에서 말한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들)의 단점들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뒤부터 눈팅만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특히나 페이스북을 닫은 2015년 6월부터 글 싸는 거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기만 했고 가끔 참지 못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네이버 블로그에 짤막하게나 싸왔다. 그러던 중 한 작가 분의 소개로 브런치를 알게 됐고 1달 여간의 눈팅 후 브런치에 글을 싸기로 결심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배가 아픈데 마땅한 화장실이 없어 참고 참다가 맘 편히 쌀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가 신청을 했는데 관계자 분께서 이 열정에 공감해주셨는지 정말 감사하게도 한 번에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2월 26일에 작가로 선정되고 무려 6일이 걸렸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우리 속담과 'Well begun is half done.'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 생각나 왠지 모를 기대감에 찬다. 다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서로가 쓴 글을 읽고, 공감하고, 때론 토론도 하면서 더 깊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많이 부족한 아직 햇병아리 작가지만 오늘 이 한 걸음이 앞으로 마주할 삶의 판단들을 도울 초석이 될 거란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