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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항준 Danniel Park Feb 20. 2023

박항준의 북칼럼]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老교수의 울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어 내려가자니 죽음을 앞둔 老교수의 막힘없는 시대해석과 후대에 남기고픈 메시지의 열정이 느껴져 단 한 장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책이란 걸 깨달았다. 책이름으로 네이버 이미지를 검색하면 책 표지보다 감동으로 밑줄 그어진 책 속 내용들이 더 많이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 죽음 앞에 서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고인에 대한 예우에만 빠져 비판 없이 받아들일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고, 워낙 당신 얘기만 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시라 CEO독서토론회와 북 칼럼을 쓰기 위한 도서 선정에 머뭇거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시니 논쟁도 할 수 없어 더욱더 책과 老교수에 대한 언급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를 돌아보면서 21세기에 일어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맹종과 분쟁, 갈등과 무조건적 지지가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老교수께서 책 중에 강력하게 말씀했던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마라’라는 메시지에 강력한 인사이트를 받게 되었다.      


책에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갈릴레오의 혼잣말을 비판한 대목이 나온다. 당신은 갈릴레오의 혼잣말을 남이 들었으면 그게 혼잣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보고 듣는 그대로를 의문과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성찰이 없어지고, 신념 없는 비난이 생긴다. 성찰 없이 만들어진 내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패를 나누고, 무조건적인 맹종과 신뢰를 요구한다. 한 마디로 사회적 리터러시(문해력)가 약해지는 것이다.      


사회적 문해력이 약해지게 되면 우리 인간은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게 되더라도 실제로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다 보면 사회적 문해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외부의 자극에 쉽게 꺾이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전통과 관습, 학문이라는 이름 하에 수천 년 전의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기도 한다. 사회적 의사결정장애가 오면서 남에게 너무 쉽게 내 정신과 심지어 운명을 맡기기도 한다. 1차 대전 이후 독일 시민들이 독재자인 히틀러를 선택했을 때의 상황처럼 말이다. 


이에 죽음을 앞둔 老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지혜화되어 후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그 많은 글과 말을 남겼지만, 필자는 이 책에서 그분이 남기신 가장 강력한 메시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살면서 가르치고, 알려주었던 그 어느 교훈보다, 그 어느 지혜보다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이어령 너 정말 대견하구나.”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었던 ‘이어령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배운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삶은 성장과정에서 선생님들에게 오해받고, 친구들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스스로 지칠 수 있는 환경이었으리라. 종교가 우선시되던 시대 당시 하나님을 모욕한 것으로 눈치 받았을 갈릴레오의 삶을 상상해 보라. 이미 과학계의 중요인물이자 유명세를 타고 있던 뉴턴마저 빛이 입자임을 주장한 광학이론을 발견한 지 수십 년 후에나 발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외로움과 따돌림은 무서운 것이다. 실제 엔트로피 이론을 완성시킨 볼츠만은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과의 갈등과 고립감으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이 어려움을 경험한 이어령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말고 ‘정신적 근육’을 높일 것을 주문한다. 비록 고립되고, 비판받고, 외롭더라도 정신적 근육을 통해 자기 성찰과 세상을 보는 눈인 사회적 리터러시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 점을 당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심이 우러날 수밖에 없었다.       


경제학자들 중 혁신을 외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통화와 이자율, 물가상승률 등 기존 경제학의 성과지표에 갇히면 혁신은 없다. 새로운 성과지표를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경제발전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가 급속히 팽창하고, 새로운 기술로 인한 경제 시스템이 도입되는 시점에 통화에만 갇히면 경제성장률과 이자율 만으로 이 복잡하고 거대해진 경제를 통제할 수 없다. 마차시대의 채찍과 당근만으로는 자동차시대를 통제할 수 없는 이치다. 21세기형 사대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정신적 근육을 길러야 한다.      


21세기 교육의 방향도 이 정신적 근육, 안티프래질 한 성향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잘못 쓰면 리터러시 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제대로 사용하면 정신적 근육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죽음을 앞둔 老교수가 우리에게 남겼던 가장 강력한 ‘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할 정도로 사회적 리터러시를 높이라’는 메시지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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