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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항준 Danniel Park May 15. 2023

북칼럼]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어느 놀이에 대한 설명글이다. “혼자서는 사다리·민들레 씨앗 등을 만들고, 여럿이 할 때는 실 테를 두 손에 한 번 감아 걸고, 다시 두 손의 약손가락으로 감은 실을 걸어 뜬 뒤 상대에게 넘기는 ‘날틀’, 날틀 양쪽의 가위처럼 벌어진 부분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걸어 쥐고, 아래 줄 밖으로 둘러서 위쪽 가운데로 올려 뜨는 ‘쟁반’, 쟁반 가운데의 줄이 교차된 두 각을 걸어 쥐고, 바깥 줄을 밖으로 빼었다가 위쪽 가운데로 올려 뜨는 ‘젓가락’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면 다음 사람이 이어받아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다시 차례를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형태가 흐트러지거나 실이 풀어지면 놀이에서 지게 된다. 정해진 모양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형을 해 가며 노는 것으로, 솜씨 좋은 이들은 창의적인 형태를 만들어 상대가 이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혹 눈치 빠른 이라면 이 놀이가 ‘실뜨기’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 실뜨기를 설명한 글 그대로 따라 해 본다면 결코 쉬운 놀이로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실뜨기 놀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철학을 글로 압축해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운 놀이를 어린 나이에 쉽게 할 수 있었을까? 바로 몸으로 부딪히면서 가까운 형이나 누나들에게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이 접근방식이 철학을 쉽게 읽고 배우는 힌트가 될지 모른다.       

특정 철학책을 무턱대고 읽어보겠다고 도전하다가는 실뜨기를 글로 배우는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미 몸으로 부딪히면서 철학을 느껴왔다. 인생의 목표를 위해 고민도 해봤고, 종교와 인간, 증오와 사랑, 윤리와 그름, 선과 악, 맞고 틀림, 좋고 나쁨 등의 갈등 속에 살아왔고 결과야 어떻든 철학적 의사결정을 해왔다. 물론 체계적이지 못하고, 성찰의 깊이가 부족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관념’을 만들어 내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가치가 생기며, 철학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만,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인 ‘관념’은 항상 불완전하다. 그래서 더 깊은 성찰과 지혜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안다. 우리가 다른 이의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성현들이 성찰하고, 고민하며, 세상을 바라보았던 관점을 책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런데 배움의 갈급함에 빠져 철학책을 무턱대고 읽게 되면 실뜨기를 책으로 배우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철학책은 저자가 추구하는 목적을 정의 내리고, 순서를 배열하고, 사례로 표현하는 편집 구성을 갖는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글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첫 장을 넘기기 어려울지 모른다. 


화이트헤드가 쓴 ‘관념의 모험’이라는 철학서를 예로 들어보자. 인간은 각자 자기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성숙해질수록 내 생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종교, 자유, 우주, 과학, 사회, 가족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들이 어떻게 서로 힘을 합쳐 인류사회를 발전시켜 왔으며, 어떤 원인에 영향을 받아 진화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관념의 모험’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 불완전하게 발전된 관념이 인류사적으로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의 방대한 불량을 화이트헤드가 단, 500페이지 안에서 압축하여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과 압축노력, 다양한 관점의 모험이라는 위대함에 감탄하면 첫 장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왜 이렇게 두껍고, 왜 이렇게 어렵게 썼는가가 이해가 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 관념의 불완전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데 젊었을 때 피 끊던 정치적 이념, 자녀교육에 대한 경쟁지향적 교육관, 사업실패를 이끌었던 맹신, 내가 가졌던 사회적 편견, 배신에 인한 상처로 생긴 선입견을 반성하게 된다.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은 내 불완전한 관념 속에 갇히지 말라는 경고이자 스스로 껍데기를 벗고서 새로운 관념을 찾아 모험을 즐기라는 명령이다.       


이제 왜 이러한 관념적 오류가 발생했었는지, 이 결과로 인해 내가 얼마나 힘들고 괴롭힘을 당했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을 화이트헤드의 글 속에서 찾아보자. 그리고는 내가 부족했던, 잘못 생각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성찰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 순간 이 책 속에서 나의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아마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고, 질문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화이트헤드와 1대 1로 대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철학책을 읽는 묘미다.      


내 관념(생각) 없이 철학책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철학자에게 세뇌당하고, 종속되어 철학자를 신격화하게 되며, 아니면 책은 아예 첫 장부터 지루해서 한 장을 넘기기도 어려울 수 있다. 철학은 내 실패를 거울삼고, 철학자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자기 성찰을 통하여 내 관념의 부족함을 메워 나아가기 위해 읽어야 한다.       

이제 460 페이에 달하는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에 도전해 보자. 아마 글로 보는 철학책이 아닌 내 성공과 실패의 삶을 투영해 보면서 모험을 떠나며 보는 철학여행이 되어  지혜의 달콤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dhanw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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