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00년경 노자는 <도덕경>을 완성한다. 비슷한 시기 공자는 논어를 설파한다. 주나라가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사회가 신에서부터 왕으로의 통치권의 변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같은 시기에 두 철학자는 역사에 다른 영역의 필란트로피를 남겼다.
<논어>가 채움의 미학이라면 도덕경은 비움의 미학이다. 논어는 불완전한 관념을 고도화하는 자기채움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논어는 서(書)로 분류된다. 서(書)는 Doxa(억견이나 법)라고 하는 인간이 살면서 지켜야 하는 사회규칙과 약속(法)을 주제로 한다. 흔히 알고 있는 <4서 3경>에서 4書에는 논어 외에 맹자, 대학, 중용이 있다. 성경도 모세 5경을 제외한 잠언서, 전도서, 복음서, 바울서신서 등은 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반면 <도덕경>은 자기비움을 목표로 하는 경전이다. 자기비움은 자기채움으로 쌓아놓은 관념을 자기성찰에 의해 소화시키고, 이제 내려놓는 단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경은 <경(經)>으로 분류된다. 경(經)은 Testament(증거, 약속)로 인류의 가치와 우주의 법칙에 따름을 주제로 한다. 3經에는 시경, 서경, 역경이 있으며, 성경에는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 있다. 불교에서는 법화경, 천도경, 지장경, 금강경 등의 경전이 있다. 다만, <도덕경>은 유교 3경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무위(無爲)의 道(도)를 중시함으로써 도교(道敎)를 탄생시키는데 중심이 되는 도덕경은 인(仁)을 통한 德(덕)을 중시하는 논어 중심의 유교와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3000여 년 전부터 내려온 갑골문에서부터 <德>과 <道>라는 글자는 철학적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해당 글자들을 파자해 보면, 우선 공통적으로 <조금 걸을 척(彳)>자가 들어가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진 시대적 환경으로 볼 때 척(彳)자나 발지(止)자가 포함된 <착(辶)>자는 <자연神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의미가 크다. 척(彳)자의 神(신)과 연결되는 의미는 내 관념을 이끌고 신에게 다가가다는 의미의 <連(연)>자나, 내 여러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자연의 법칙에 맡기다는 실천의 의미를 갖는 갑골문 <運(운)>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행운, 운동 등에 쓰이는 運(운) 자는 심오할 정도로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德(덕)>의 파자
德자는 척(彳) 자와 目(목), 心(심)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직접 보고(目), 마음(心) 먹음으로써 생기는 관념(Text)을 고도화시키는 행위를 표현하고 있다.
<道(도)>의 파자
반면 척(彳)이 포함된 착(辶) 자와 머리首(수) 자로 구성된 道자는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는 의미가 된다.
<도덕경>의 구성은 자기채움을 위한 <德經>과 자기비움을 위한 <道經>으로 명쾌하게 구분된다. <도덕경>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기채움을 실행하는 단계가 德(덕)이며, 부족한 자기 관념을 높이는 고도화 단계를 상덕(上德)이라 한다. 반면, 자기의 관념이나 욕심을 내려놓고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는 단계가 道(도)이며, 채워졌던 자기 관념을 실제로 내려놓는 <자기비움>을 실천하는 고도화 단계를 大道(대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덕경>이 더욱 위대한 것은 <덕>과 <도>의 상호 역학관계를 명확히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자본인 자기채움과 품위자산인 자기비움은 사실 상호 중첩과 얽힘 관계에 있다. 자기채움 없는 자기비움은 사이비 도인(道人)이 된다. 대도(大道)의 단계는 최고 수준의 자기비움을 실천하는 단계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의 원리와 순리를 깨닫고, 내려놓음을 깨닫더라도 옮음(right), 맞음(true), 좋음(good)이라는 관념의 질량인 성공자본이 없으면 바른 大道(대도)를 펼칠 수 없다.
반면, 자기비움 없는 자기채움은 자기 관념으로 세상을 망치게 한다. 덕(德)의 단계는 옮음(right), 맞음(true), 좋음(good)을 만들어가는 단계다. 그러나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세상에서 존경받는 상덕(上德) 단계일지라도 <자기비움>인 대도(大道)에 힘쓰지 않음은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인류사회에서의 일어나는 잔혹한 전쟁들이나 사회적 갈등의 대부분은 자기채움이 훌륭해 보이는 그러나 자기비움이 부족했던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품위자산 없는 성공자본만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은 될 수는 있으나 진정한 필란트로피를 만들 수 없다.
결국 인간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德(덕)으로 성공자본을 채우고, 道(도)로 품위자산을 비우는 중첩과정과 얽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진리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도덕경>이 우리에게 주는 최종 메시지다.
최근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시세계에 대한 시각 즉 <양자물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사회가 점점 미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집단주의, 종족사회, 국가주의 등의 최소단위가 서서히 세분화됨으로써, 양자 수준의 개인주의적 인간들이 탄생하기 시작하면서 사회학적으로 (가칭) 양자사회학이 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ESG, 다양성, 그린텍소노미, DAO, 웹 3.0 등은 도래하는 양자사회의 맛보기로 보인다. 여기에 양자사회를 구성하게 될 개인들이 양자중첩이나 양자 얽힘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는 말을 남겼다.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德이며,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道>이지 않을까를 곱씹으며 감히 <도덕경>에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 /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danwooL@naver.com)
(공)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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